우리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는 사회변동과 정치변동의 중대 결절점 중 하나다. 사회구조의 가시적, 비가시적 변화 또는 정치적 세력 관계의 변화는 선거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 선거의 결과는 다시 사회변동과 정치변동에 피드백 되어 왔다. 우리 현대사에서 1963년 대통령 선거, 1987년 대선이 그러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서 치러진 대선 또한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기존의 사회 및 정치질서를 유지해 온 제동 장치가 풀리는 이 '정치적 순간'이 그렇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시대정신, 이 시대정신을 추진하는 정치 세력, 그리고 이 시대정신에 공감하는 시민사회가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선거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다.
20년을 관통해 온 시대정신의 종언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올해 12월 대통령 선거는 세 가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진행된 민주화에 대한 결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결산,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1961년부터 시작된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포괄하는 근대화에 대한 결산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단연 민주화에 대한 결산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에서 간간히 표출돼 왔다. 한편에서 제기하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나' 또는 '민주세력 무능론'이 민주화 과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면, 다른 한편에서 강조하는 '민중민주주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 또는 '사회운동 급진화론'은 민주화 시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적극적인 옹호를 표방하고 있다.
돌아보면 1997년 대선에서 시작해 2000년 낙선운동과 2002년 대선을 거쳐 2004년 총선에 이르는 시기가 민주화 시대의 절정기였다. 2002년 대선은 1997년 대선에 이어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의 일대 격전장이었으며, 2004년 총선은, 그것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 아래 치러졌음에도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마지막 불꽃을 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사회든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그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 내지 시대정신이 존재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지난 20년을 이끌어 온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민주화였다.
이 민주화 시대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시대정신, 정치 세력, 시민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관찰된다. 이 종언은 1997년 외환 위기와 이와 연관된 세계화의 충격에 기원을 갖는다. 역사가 힘과 힘이 교차하는 것이라면 민주화라는 구심력이 세계화라는 원심력을 적어도 노무현 정부의 출범까지는 제어했지만, 그 이후 지난 4년 동안 세계화의 원심력은 민주화의 구심력을 벗어나 마치 사슬 풀린 프로메테우스와 같았다.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적 변화는 이를 보여준다.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강화되어 왔으며 동시에 시민사회와 시민문화의 다원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고용 없는 성장의 가시화, 국제 자본의 영향력 강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대,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 국가적 의제로서의 저출산·고령화·청년실업 이슈의 등장, 그리고 대중문화에서의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경향의 동시적 증대 등은 그 구체적인 징표들이다.
민주화 세력에게 세계화란 무엇인가
문제는 더 이상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으로는 이 과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민주화 세력은 다원화되어 있고 사회운동은 분화되어 있으며 시민사회 전체는 세계화의 충격으로 이미 변화되어 있다.
일각에서 민주·개혁·평화세력의 재결집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화 세력의 현주소를 지켜보면 이 주장이 공소(空疎)하다는 느낌은 과연 나만의 것일까. 이라크 파병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북한 핵개발에 대해 민주·개혁·평화세력은 어떠한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국민 다수를, 적어도 지지 세력들을 어디까지 설득할 수 있을까.
6월 민주화 운동 20주년을 맞이한 현재, 민주화 세력이 직면한 것은 민주화 시대의 종언이자 세계화 시대의 개막이다.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가 열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화를 이끌어갈 새로운 시대정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에서 이번 대선은 민주화 시대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모두 결산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 60년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초(定礎)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사회학적으로 민주화와 세계화는 사뭇 다른 사회 조정 원리다. 민주화가 규범판단적 가치를 갖고 있다면, 세계화는 사실판단적 개념에 가깝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反)민주화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기에 중도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을 모두 포괄하는 민주화 세력은 세계화 시대라는 패러다임을 선뜻 승인하기 어려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것을 언제까지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더 이상 외면하기도 어렵다.
이번 대선을 맞이한 정치 세력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떤 세계화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시대정신의 제시에 있다. 현재 보수 세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국적 버전인 '선진화'를 내세우고, 민주화 세력 내 진보 세력은 '반세계화(anti-globalization)로서의 세계화'를 위한 '진보 개혁'을 지지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진보 개혁은 그 장단점이 뚜렷한 전략이다. 개방과 구조조정, 탈규제와 민영화, 국가 역할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사회적 양극화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편 진보 세력이 내세우는 반세계화 전략은 신자유주의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를 적극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진보적 경제·사회 발전 전략을 적어도 이제까지는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화 시대에 대한 평가라는 정치적 전선 속에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또 하나의 전선이 놓여 있는 셈이다.
민주화의 계승과 세계화의 제어
문제는 중도개혁 세력이다. 중도개혁 세력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시대정신으로 민주화를 내걸어 집권에 성공했지만, 선진화 또는 진보 개혁에 맞설 수 있는 시대정신을 여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응에서 보수적 중도개혁 세력과 진보적 중도개혁 세력 사이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온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평가를 안고 가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중도개혁 세력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민주화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할 것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어떻게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세계화 시대 우리 국민 다수의 열망은 성장 동력의 가속 페달을 다시 밟을 수 있는 부국(富國),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상생(相生), 그리고 남북한의 공존을 실현할 수 있는 평화(平和)의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최종 선택의 지점에서는 이번 대선 역시 지역투표와 계급투표, 그리고 세력 간의 정치적 이합집산이 큰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투표 성향이든 정치적 연대든 그 기본 방향과 전략은 시대정신이라는 흐름 속에서 작동되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과연 어떤 시대정신들이 경쟁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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