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인천 계산공업고등학교에서 만난 홍석민 군은 이날 1일교사로 나선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특강을 들은 후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석민 군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수업을 듣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못난 사람들이 노조하는 줄 알았다"
지난 26일부터 인천에서 현장대장정을 하고 있는 이석행 위원장이 인천지역 마지막 날인 이날 실업계 고등학교를 찾았다. 현장대장정의 목적은 각 지역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지만 미래의 노동자인 학생들 역시 '예비 조합원'들이기 때문.
본인이 전북 기계공업고등학교 출신인 이 위원장은 이날 계산공업고등학교 3학년 학생 60여 명을 상대로 50분 가량 수업을 진행했다. "아저씨도 30년 전에 여러분과 똑같이 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며 시작한 이날 수업의 주제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었다.
이 위원장은 이같은 주제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업에 앞서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학생들이 '미래의 노동자가 될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왔다'는 말을 듣고 '피식' 웃는 것을 보고 노동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말이 혼용돼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학생들은 노동자라고 하면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을, 근로자라고 하면 사무직 종사자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를 반영하듯 김한결 군도 "노동자라고 하면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고 얘기했다.
더욱이 과거 졸업 후 바로 취직하는 비율이 높았던 실업계 고등학교가 대학 진학율이 높아졌다. 이처럼 바뀐 현실도 학생들이 '예비 노동자'라는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실제 이날 만난 학생들의 대부분은 "졸업 후 진학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한 학생은 "대학을 나오고 나면 TV에 나오는 것처럼 넥타이 매고 일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나는 노동자가 안 될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이 위원장에게 학생들이 털어놓은 '꿈'은 다양했지만 대체로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으로 인정받는 곳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국전력공사같은 공사에서 일하고 싶어요."
"연예인이요."
"호텔에 들어갈 거예요."
"삼성전자에 입사하고 싶은데요."
이 위원장은 이같은 학생들의 꿈을 들은 뒤 "여러분이 대학을 졸업하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든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게 되면 모두 노동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자라는 것이 나쁜 말이 아니다"라며 "노동자가 없으면 아파트도 지을 수 없고 비행기도 하늘을 다닐 수 없으니 노동자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날 갑자기 임금이 줄어들거나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떻할래요?"
학생들은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545만명이 넘는다. 더욱이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파견근로자와 용역근로자 등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노동자의 비중은 점점 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기업의 구조조정 바람으로 고용불안에 늘 시달리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같은 현실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며 노동조합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옛날 얘기 중에 이런 얘기 알아요? 죽기 직전의 아버지가 다섯 형제들을 불러 놓고 회초리를 하나씩 꺾어보고 여러 개를 뭉쳐 꺾는 것을 보여줬어요. 그런데 하나씩 꺾을 때는 잘 꺾이던 회초리가 뭉쳐 놓으니 잘 안 꺾이던 거죠. 왜 그럴까요? 그만큼 여러 개를 뭉쳐 놓으면 힘이 더 세지는 거죠. 노동조합도 마찬가집니다."
이 위원장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월급이 줄어들거나,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며 "혼자 아무리 하소연을 해봤자 힘이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서 헌법에 보장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조합은 다른 어느 단체와 달리 헌법 제33조에 보장된 권리"라며 "결코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저씨들이 머리띠 묶고 길에서 시위하면 보기 안 좋지?"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오죽하면 그러겠냐. 그래도 그렇게 해서 세상이 이만큼 좋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북기계공고 재학 당시 선생님들이 자격증만 많이 따면 양복 입고 멋진 곳에 출퇴근하면서 살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해주셨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일당 750원을 받는 삶이 기다리고 있더라"며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낮은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80만 조합원의 수장이 된 이석행 위원장. "나는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한 가지 뜻을 가지고 한 길을 가면 아저씨처럼 '대장'이 될 수도 있다"며 우스개소리를 건넨 이 위원장의 얘기를 듣던 석민 군은 "쟁쟁한 대학교 출신인 줄 알았는데 다른 것보다 대학도 안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며 "나도 나중에 '대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하고 길에서 아저씨 만나면 '술 한 잔 사주세요'라고 말해달라"며 수업을 마쳤다. 그가 만난 60여 명의 '예비 노동자'들은 대부분 "민주노총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때쯤 민주노총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6개 월 간의 현장대장정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이석행 위원장의 발걸음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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