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쓰는 이 칼럼에서 오늘은 인도네시아 여성운동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작년 '언론자유상'을 수상한 가디스 아리비아(Gadis Arivia)를 지난 주에 다시 만났다. 그는 현재 인도네시아국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인도네시아국립대 철학과에서 페미니즘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1998년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을 때 그녀가 창간하고 편집자로 있는 <여성 저널>(Journal Perempuan)이라는 페미니즘 저널을 발간하는 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1990년대 중반 그의 집 뒤편의 조그만 통나무 집 서재에서 탄생한 <Journal Perempuan>은 여성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무한 상황에서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소박한 의도로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이 소박했던 잡지가 이제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여성 계간지가 됐고 여성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한번쯤 거쳐가는 곳이 되었다. 처음에는 여성문제에 대한 논의를 철학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정치, 인권, 종교, 빈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녀의 활동은 여성문제를 토론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았다. 수하르토 집권기가 종말을 향해 치닫던 1999년 초 그녀는 여성운동가들을 조직해 '걱정하는 어머니들의 모임'(Suara Ibu Perduli)을 결성했다. 자카르타와 주변 지역의 여성단체들과 함께 만들어진 이 조직은 경제위기로 인한 생활고에 대처하기 위해, 특히 저소득층과 슬럼가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더 나아가서는 경제 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일반 시민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해 그를 비롯한 여성 활동가들은 자카르타 시내에서 시위를 했고 이로 인해 경찰에 연행돼 재판을 받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직은 여전히 자카르타 슬럼지역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공동체 조직을 설립하고 혼자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단체로 건재하고 있다.
'걱정하는 어머니들의 모임'의 시위는 당시만 해도 일반 대중이 독재 정권에 반대하여 거리에 나서길 꺼려하던 상황에서 '어머니'들의 단합된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중산층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빈곤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는 계급간 연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근에 그녀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포르노금지법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이면서부터였다. 인도네시아 의회에서 이슬람정당인 '정의복지당'의 지지로 포르노금지법이 논의됐다. 이 포르노금지법은 포르노를 금지시키는 것이 주 내용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예를 들어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노출의상을 입을 수 없으며, 이슬람 여성들은 질밥(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을 써야 하고 밤에 외출을 금지하는 등의 조항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여성의 사회경제 활동이 자유로운 인도네시아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고, 여성단체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는 연대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거리에 나서 시위를 하고,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열어 포르노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모금을 시작해 신문에 직접 3000명의 지지자 이름과 왜 포르노금지법에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담고 있는 신문 전면광고를 싣기도 했다. 신문광고를 내는 방법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회의에 참가했다가 현지 단체들의 활동방법을 보고 배운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항상 생각이 열려 있다. 어디에 가든 배울 것을 찾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다.
그녀는 노출 의상을 입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나서서 여성이 어떻게 행동하고 옷을 입어야 하는지 관리한다는 것은 인권의 침해이며 국가의 월권행위라고 강조한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 세속적(secular) 국가이고 이런 국가의 정체성(identity)을 지키는 것은 자신과 같은 시민들의 힘이라고 그녀는 굳건히 믿는다.
그녀의 자그만 체구를 보면 어디에서 그만한 힘이 나오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그녀는 이 땅의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독재와 경제위기로 인한 빈곤에 대항해 싸우기도 하고, 여성 인권을 위해 여성 단체들과 연대해 포르노금지법에 대항해 싸우기도 한다. 계급이 다르고 분야가 달라도 넓은 의미의 인권을 위해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인도네시아 여성운동이 고립되지 않고 역동적으로 지속되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다.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격주간으로 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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