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나이 먹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경기보조원 이민숙 씨는 지난해 12월 24일 42세 생일날 13년 동안 일했던 경기도 오산의 한원CC에서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는 딸 하나와 함께 사는 여성 가장이다.
이 씨는 "정년이 됐다며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황당하고 막막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큰 일"이라며 "다행히 작년에 담가둔 김치로 버티고는 있는데 쌀이 떨어질 때가 다 돼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씨는 "하나뿐인 딸이 취업을 위해 다시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뒷바라지해줄 형편이 못 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원CC에서는 지난 1월 29일에도 경기보조원 장옥순 씨가 42세 생일에 해고통보를 받았다. 장 씨 역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 가장이다.
이 씨는 "올해만 하더라도 동료들 가운데 3~5명이 42세가 된다"며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나이 먹는 것이 두렵다'며 불안해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5년 더 일하게 해주겠다면서…조기정년은 사회적 낭비"
다른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경기보조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의 프라자 골프장도 42세의 정년 규정을 두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리베라 골프장과 경기도 용인 남부골프장은 40세를 경기보조원의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37세의 정년을 둔 곳도 있었다.
유독 경기보조원에 대해 이처럼 낮은 정년을 적용하는 것은 이들의 업무가 골프장 손님에 대한 '접대'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민주노동당 경기도당의 김현경 부위원장은 "경기보조원에 대한 유달리 낮은 정년제도는 '캐디는 젊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여성을 성 상품으로 보는 저급한 인식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여성 가장이 많다는 경기보조원들에게 42세는 아직 '돈 들어갈 곳이 많은', 한창 일해야 할 나이다.
더욱이 이같은 일은 최근 정부가 낮은 출산율과 늦은 결혼 등으로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있는 사회현실에 맞춰 정년을 늘리는 '2+5 정책'을 발표한 가운데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이영화 조직국장은 "정부의 이같은 정책은 이미 때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며 "시대에 역행하는 '조기정년제'는 당장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경기도당의 김현경 부위원장도 "경기보조원의 조기정년 문제는 개개인 생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여성 인력의 낭비"라면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수고용노동자라서 어쩔 수 없다니…경기보조원은 국민 아닌가"
이들은 2년 전인 지난 2005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조기정년제에 대해 차별시정을 촉구하는 진정을 냈었다. 하지만 인권위는 사건이 복잡하다며 2년이 다 되도록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인권위가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기보조원이 현재 법률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 '사용자와 경기보조원이 고용-피고용 관계에 있는지'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보니 정년에 대한 차별 여부의 판단이 쉽지 않은 것.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인권위에 앞서 찾아갔던 노동부에서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경기보조원들은 20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기보조원 역시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호받아야 하며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 있다"면서 인권위의 조속한 판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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