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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한국 찾은 빔 벤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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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0년만에 한국 찾은 빔 벤더스

[뉴스메이커] 길 위의 시인 빔 벤더스, 특별전 맞춰 방한

빔 벤더스 감독이 1997년 이후 무려 10년만에 한국을 공식 방문해 14일 압구정 스폰지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60이 넘은 나이가 되어 얼굴엔 주름도 깊게 패였지만, 반짝이는 금발을 길게 기른 채 나지막하고 느릿하게 뱉어내는 말 속에는 들어있는 여전히 영화청년다운 열정이 흘러넘쳤다. 영화사 스폰지의 주최로 15일부터 전국 일정을 시작하는 빔 벤더스 특별전을 위해 내한한 빔 벤더스 감독은 70년대에 최고조에 달한 독일의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 1962년 "아버지들의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 영화를 믿는다"는 그 유명한 오버하우젠 선언 이후 독일영화의 중흥을 가져온 뉴 저먼 시네마는 알렉산더 클루게 감독을 중심으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베르너 헤어초크, 폴커 쉴렌도르프,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그리고 빔 벤더스 등의 걸출한 감독들을 낳았다. 빔 벤더스 감독은 뉴 저먼 시네마의 감독들 중에서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감독이다. 1972년 <페널티 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으로 장편 데뷔해 주목을 받은 그는 1976년작 <시간의 흐름 속으로>로 깐느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고, 1982년작 <사물의 상태>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영화광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파리 텍사스>(1984)나 <베를린 천사의 시>(1987)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적인 아름다움은 이 감독이 떨치고 있는 전세계적인 명성의 이유를 명백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약 15년간 거주하며 미국 배우들과 영어로 된 영화를 만들며 더욱 행보를 넓혀간 그는 90년대 들어서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더 블루스 : 소울 오브 맨> 등 음악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드러내는 음악 다큐멘터리들을 만들어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 사이에서 팬층을 확대했고,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빔 벤더스 감독 (사진제공:스폰지)
빔 벤더스 특별전은 3월 15일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국도극장, 3월 29일 ~ 4월 11일), 광주(광주극장, 4월 13일 ~ 4월 19일), 대구(동성아트홀, 4월 26일 ~ 4월 29일), 대전(대전아트시네마, 5월 3일 ~ 5월 9일) 등 전국 주요도시를 돌며 순회상영을 할 예정이다. 평소 좋은 기획의 특별전이 주로 서울 중심의 상영으로 그쳤던 데에 반해 오랜만에 지방 관객들도 예술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게 됐다. 다음은 기자회견에서 감독과 나눈 대화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한국관객들이 왜 당신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가? "영화를 본 적이 있으니 팬이 됐겠지. 독일감독인데도 해외에서 인기가 더 많은 건 신기한 일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같은 영화는 특히 아시아에서 성공한 영화이기도 하다. 독일 속담에 "예언자는 자기 나라에서는 인정을 못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나도 그런 것같다. 내 영화를 가지고 많은 곳을 여행하다 보니 해외의 팬들을 더 발견하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대부분의 다른 독일영화보다는 좀 '덜 독일스러워서' 인 것 같기도 하다." - 음악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들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음악은 내 인생에 있어 매우 큰 부분이고 중요하다. 21살에 큰 결단을 내린 적이 있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돈도 카메라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던 그 때, 전당포에서 어느 날 렌즈가 세 개 달린 60mm 중고 볼렉스 카메라를 발견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하려던 찰나에 카메라 뒤에 색소폰이 놓여있는 걸 보고, 마침 그때 내가 갖고 있던 테너 색소폰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카메라와 값이 똑같았다. 미련없이 색소폰을 팔아 카메라를 샀다. 그때 이후로 죄책감이 들어서 음악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고 있다.(웃음)" - 쿠바 음악, 블루스 등 '월드뮤직'을 주로 다루었는데 은 독일 쾰른의 락음악을 다룬다. 특별한 애착이 있나? "는 예외적인 경우다. 이 영화에는 독일의 락밴드가 나오지만 독일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에도 자막이 필요했다. 이 밴드는 중세 독일어와 비슷하고 코크니 사투리가 심한 데다, 독일 역사를 다루고, 전쟁 이후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루는 곡들이기 때문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프레시안무비
- 감독에게 '미국'은 어떤 의미인가? 혹은 미국과 유럽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 매료되었다. 내가 자랄 때는 독일이 막 전쟁이 끝난 뒤였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기 때문에 매우 따분했다. 그러다보니 어릴 적 본 음악, 만화, 책, 영화, 모두 미국 거였다.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책을 좋아했다. 말하자면 독일에서 자랐으나 미국 문화와 함께 한 셈이다. 내게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이 약속의 땅인 양 느껴지도록 해줬다. 좀더 크면 미국에 가서 꼭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초기 영화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에 "양키들이 우리 무의식을 식민지화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한참 뒤에 나는 무의식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의 측면도 식민지화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 여러 나라에 오늘날까지도 미국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15년간 미국에서 살았고,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내 영화 <랜드 오브 플렌티>가 바로 미국에 대한 지금의 나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국에 비판적인 측면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미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다." - 1997년 이후 세계 여러 곳을 다녔으나 한국에는 오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온 서울은 어떤가? 또한 한국의 풍경을 영화에 등장시킬 마음이 있는가? "아주 안 온 것은 아니고 부산에 한 번, 서울엔 두세 번 정도 왔지만 공식적인 방문은 아니었다. 공식적은 방문은 1997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은 그간 참 많이 변해서 거대도시가 되었고, 예전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항에서 오는 길에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 주차건물(건물 전체가 주차용인 건물)이었다. 게다가 차들은 어찌나 다들 큰 차만 있는지, 외국의 많은 나라들도 다들 작은 차를 몰고 내 경우는 차가 아예 없는데서울 사람들은 모두 큰 차만 타나 싶었다. 다들 내일은 생각없이 어쨌건 오늘은 큰 차를 타자!고 외치는 것 같다. 그래서 만약 내가 서울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다들 큰 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정신없이 주차장을 찾는 모습을 찍을 것 같다. 등장인물 중 하나를 발렛파킹 해주는 사람으로 하는 거다. 만약 내가 발렛 파킹을 해주는 사람이라면, 큰 차 중 마음에 드는 걸 안 돌려주고 그대로 타고 도망쳐서 시골을 여행하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는 벤틀리 정도 돼야 할 거다.(웃음)" - 한국영화에는 관심이 있는지? 최근 본 한국영화에 대한 소감은? "마지막으로 본 한국영화가 3달 전에 프랑크푸르트영화제에서 본 <그때 그 사람들>이었고 너무 마음에 들었고, 어제 임상수 감독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베를린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는 괜찮아>와 <올드보이> 등을 재미있게 봤다. 근래에 한국영화를 많이 보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한 게, 베니스나 베를린 등 유럽의 큰 영화제들에는 항상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수상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님은 여기저기 오다가다 주로 공항에서 많이 마주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인사를 하곤 한다. 존경스러운 분이다. 최근에 100번째 영화를 찍으셨다고 들었다. 나는 61살이 되어서 이제 30여 편을 찍었는데, 100편을 채우려면 아마 60년은 더 살아야 하지 않을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프레시안무비
- 빔 벤더스 감독이 생각하는 한국영화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 아주 놀라운 영화였는데, 재미있으면서도 아이러닉해서 뜻밖의 결과를 내놓곤 한다. 그런데 이게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 놀라울 수밖에. 하지만 이 영화가 '전형적인' 한국영화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 준비중인 다음 영화들을 소개해 달라. "두 편 가량을 준비중인데 한 편은 아직 쓰고 있는 중이라 여기에서 얘기를 하긴 힘든 것같다. 올해 말에 이탈리아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다른 한 편은 내년 정도에나 가능할 것 같은데, 음악영화들을 제외하고 12년만에 독일어로 찍는 영화다. 최근 완성한 다큐멘터리는 <인비저블>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보이지 않는 갈등과 질병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5명의 감독이 각각 5개의 이슈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 내가 다루는 주제는 갈등이 있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우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 심지어 내전에서조차 아주 일반적으로 당연한 듯이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일어나는데, 나는 이것을 '질병'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베를린에서만 개봉을 했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소개가 되었으면 한다." . 한국문화에 아주 익숙하고 한국음식을 즐기며 특히 숯불갈비에 중독이 됐다고 말하는 빔 벤더스 감독.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의 첨언으로는 '된장'에 중독된 것 같다고, 고기를 먹을 때도 꼭 된장에 찍어먹는다고 한다.) 숱한 걸작들을 만들어내며 전세계 영화광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던 그의 앞으로의 영화인생을 응원하며, 언젠가 한국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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