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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하얀거탑 소송'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사법불신, 왜?④]높은 '법조3륜'의 문턱

'사법불신'의 원인으로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법원의 문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높은 문턱'은 사법불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물론 소송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한정된 얘기지만, 누구나 언제든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의 일'만은 아니다. 법원의 '문턱'은 법원만 쌓은 것이 아니다. 법원-변호사-검찰, 이른바 '법조 3륜(輪)'이 쌓아놓은 턱이다.

최근 종영된 화제의 드라마 '하얀거탑'은 의학드라마로 큰 관심을 끌었지만, 중간에 의료사고 소송이 발생하며 법정 드라마로서 또 다른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하얀거탑'에 등장한 의료소송이 드라마가 아닌 실제였다면 어땠을까. 드라마 내용을 바탕으로 일반 시민들이 소송이라는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가상 상황을 설정해봤다.

드라마에서는 암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권순일 씨가 장준혁 외과 과장으로부터 췌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 권 씨는 폐에 이상이 생겨 사망하게 됐고, '장 과장이 폐로 암이 전이된 것 같다는 소견을 무시한 채 췌장암 수술만 해 환자를 사망케 했다'는 이유로 장 과장은 권 씨의 유족들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 드라마 <하얀거탑>의 법정 장면. ⓒMBC

나홀로 소송? 검찰고소? 변호사 선임?

드라마에선 피해자 유족들이 무료 변론을 해 준 '인권변호사' 김훈의 덕으로 소송을 진행한다. 그러나 희생자의 유족이 처음부터 김훈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니었다고 가정해보자. 소송을 결심했을 때 선택은 크게 세 가지다. '나홀로 소송', '검찰 고소', '변호인 선임.'

'나홀로 소송'의 경우, 내용증명부터 증거보전신청 등 법률용어 자체도 생소하고 사인감정서, 병원 진료기록 등을 수집하는 절차도 쉽지 않다. 게다가 의료사고의 경우 전문지식이 없이 소송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상대방이 부장판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에 의사 자격증이 있는 의료전문 변호사까지 포함된 초호화 진용을 갖출 텐데 무턱대고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유족들로서는 권 씨의 입원과 수술, 장례가 이어지는 동안 문을 닫아 두었던 가게를 언제까지 비워둘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를 찾아가면? 착수금만 적게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 이상이 든다. 사망한 남편 수술비에 입원비, 장례비까지 쓴 상태에서 이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검찰이나 경찰에 고소하는 것. 검찰 등이 수사에 착수하면 강제권을 갖고 증거물 확보와 관련자 조사 등을 하기 때문에 원고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없다. 그러나 의료사고의 경우 '의사가 가위를 뱃속에 넣어두고 봉합'한 정도의 과실이 아니면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공식.

의료소송, 기본 1000만 원은 있어야 가능

드라마에서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거의 소송 비용이 들지 않았다. 만약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

피해자 유족 측이 병원 측 과실에 대한 피해보상금으로 1억 원을 청구했다면, 인지대(45만5000원)와 송달료(8만8000원)만 54만3000원이 들어가고, 사건별로 다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경우 부검료(약 30만 원), 감정료(약 60만 원), 증인 사례비(약 50만 원) 등으로 200만 원가량이 들어간다. 또 성공 사례금으로는 승소금액의 10~20%(1000~2000만 원)를 변호사에게 지불한다. 물론 승소 할 경우 소송비용은 패소한 측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패소할 경우 소송비용을 다 감당해야 한다.

소송비용 부담 비율은 "원고와 피고 각각 부담한다", "모두 원고 측에서 부담한다"는 등 재판부에서 결정하지만, 일반적으로 패소하는 쪽에서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결국 권 씨의 유족은 1심에서 명인대학병원 관계자들의 조직적인 위증에 의해 패소하고 말았다. 그나마 부검을 명인대학병원에서 무료로 했고, 감정증인들도 무료로 증언을 해 감정료나 증인 사례비가 들지 않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들어간 인지대와 송달료, 각종 감정료를 부담한 것은 물론, 상대방 측 변호인 비용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법원은 상대 측에서 실제로 지불한 변호사 비용을 모두 소송비용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변호사비용으로 1억 원을 썼어도 1억 원을 다 대신 낼 필요가 없다.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라 청구액이 1억 원이라면 255만 원을 상대 측 변호사비용으로 지불하면 된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권 씨 유족이 김 변호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변호사 선임료, 인지대 및 송달료, 감정 증인의 감정료, 증인 사례비, 부검료 등으로 1000만 원은 갖고 있어야 소송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강자에게 유리한 소송 구조

드라마에서는 1심에서 패소한 피해자 유족들이 항소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항소심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다. 드라마에서는 소송 과정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소송에서의 재판은 2주일에 한 번 꼴로 열리게 된다. 아직 우리나라 재판이 상당부분 서류에 의존하고 있고, 판사들의 업무량이 과도한 편이기 때문이다. 판사 1인당 1년 동안 처리하는 사건이 평균 3500여 건이다. 만약 피고인 측에서 마음을 먹고 소송을 더디게 하려면 더 느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10회의 재판이 열린다면 소송제기부터 판결까지 최소 여섯 달은 걸리게 된다. 항소심에서 재판이 5회만 열린다면 3개월이 추가되고, 언제 선고가 내려질 지 기약이 없는 상고심까지 더해지면 소송 기간만 아무리 빨라야 1년이 넘게 걸리고, 길어질 경우 3년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법정싸움이 길어질 경우 사회·경제적 약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만만치 않고 생업에 쫓겨 재판에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재판과정에서 판사와 변호사의 대화에는 소송 당사자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법률용어가 가득하고, 소송 당사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법관의 권위적인 태도 등도 현장에서 '법'을 멀게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접 받는 이유

장준혁 과장은 죽기 전 두 장의 유서를 남긴다. 한 장은 자신의 암 증상을 기록하며 시신을 의술발전을 위한 해부용으로 기증한다는 문서였고, 또 다른 한 장은 자신이 피소된 의료소송 사건에 대한 '상고이유서'였다. 장 과장의 유족들이 상고를 진행한다면?

장 과장 측은 일단 항소심의 변호사를 해임하고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할 것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승소율이 높기도 하지만, 일단 '상고심리 불속행권'이라는 대법원의 문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고심리 불속행권'이란 상고 사건에 대해 대법원 재판부가 상고장과 상고이유서, 하급심 재판기록 등을 검토한 뒤 더 이상의 심리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상고심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 것. 대법원 심리는 새로운 증거를 통한 사실 심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심 판결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었는지 살피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상고를 막고자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이 문턱을 넘는 것이 쉽지 않다. 상고심리 불속행 결정률이 4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상고심리 불속행 결정률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다분히 '전관예우'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이 차이에 대해, 한 현직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은 '상고 가능한 사건'만 맡기 때문에 불속행률에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전관예우'라고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충분히 '전관예우'라는 오해를 살 만하다"며 "내가 맡은 사건의 경우에도 솔직히 의뢰인이 패소해 상고를 원하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아가라고 충고한다"고 말했다.

이는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장 '상고의 문턱'을 넘기 위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는 없지만, 상대방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상고심에 임하게 되면 심적으로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그런데 문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상고장을 쓰는 데에만 최소 1000만~1500만 원은 든다는 것이다. 성공 보수까지 합하면 수천만 원이 든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法'

법원도 이 '문턱'을 의식해 지난 2005년부터 많은 개선책들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사건을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를 설치하는 등 '국민을 위한 법원'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만, 사실 예전에는 민원실 창구 앞에 앉아서 서류를 작성할 수 있는 탁자조차 구비하지 않은 법원이 허다했다. 그리고 많은 법률용어들은 여전히 '일반적인' 시민의 수준에서는 너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 언론으로부터 '금(金)밥통'이라는 표현까지 들었던 변호사 업계에서도 나름대로 공익 소송을 늘리고, 민사소액사건 무료 변론에 나서는 등 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에 변호사는 너무 멀리 있는 존재인 것이 사실이다.

지방일수록 변호사가 부족해 중소도시에서는 한 변호사가 판사와 함께 법정에 하루 종일 앉아 소송 당사자만 계속 바꿔가며 변론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변호사 수 증원이 끊임없는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2005년 '법학교육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합'은 매년 최소 1978명의 변호사가 충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변호사 1인당 국민수는 9391명으로 미국(284명)이나 영국(593명), 독일(707명) 등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변호사가 없다는 것이다.

판사나 검사의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위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판사 1인당 국민수가 2만6350명으로 미국(8830명), 독일(3940명)의 1/3~1/6 수준이고, 검사 1인당 국민수도 3만5107명으로 미국(8061명)이나 독일(1만6308명)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적정 변호사 수 등을 계산할 때 각 나라별로 법무사, 공인중개사와 같은 유사 법조 직역 등의 사법시스템이 달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도 "우리나라의 법조인이 외국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간 변호사 3000명 선발'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적 사법개혁을 위한 국민연대' 관계자는 "국가가 사적 영역인 변호사 업계의 수를 통제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교육까지 시켜 자격증을 준 뒤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변호사 숫자를 늘려 국민들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들이 국민들에게 찾아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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