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사이클을 타는데 흠뻑 빠진데다 한남동 집에서 안국동 사무실까지 아예 걸어서 출퇴근하는 일이 많아진 탓에 자동차를 점점 더 이용하지 않게 된 것도 된 거지만, 회사가 워낙 이리저리 쪼달리기 시작하고 구조조정한답시고 밑에 사람 자꾸 자르면서도 혼자서만 희희낙낙하는 것 같아, 나 스스로도 슬림화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갖고 있던 차를 휙 팔아버렸다. 원래 고급차도 아니었던데다 알고보니 그동안 내지 않은 과태료도 만만치 않아 생각보다 차를 팔았다고 해서 회사 살림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한들, 20년 가까이 차를 이용했던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운영하는 방송 프로덕션을 어떻게든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져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무실도 두개층에서 한 개층으로 축소하고 갖고 있던 편집기 중 한대, HD카메라와 스틸 카메라 등등도 처분할 생각이다. 방송인력 대부분을 정규직에서 계약직, 그러니까 비정규직으로 돌렸으며 일을 따오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철저한 성과급 위주로 회사 운영방식을 전환했다. 도무지 이렇게 확 줄이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조직을 나와 회사를 차린다고 했을 때 많은 선배들이 얘기했었다. "프로덕션? 그거 하지말아. 오동진! 너, 뭘 하든지 하지마! 한국에서 방송 프로덕션은 죽었다 깨나도 안돼!" 그때마다 힝, 코웃음을 쳐가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얘기했었다. "이놈의 한국에서 방송 프로덕션으로, 그것도 문화,교양,다큐멘터리 프로덕션으로 성공하는 걸 보여주겠어." 결국 그 코웃음이 부메랑으로 지금 내게 돌아오고 있다. 신문이나 시사주간지, 인터넷 신문 등에서 요즘 매일 만나는 게 이른바 '진보논쟁'이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이젠 한나라당이라고 집권해선 안된다는 것은 없다'고 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진영이 정신차려야 한다'는 식으로 대꾸하고 여기에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신이 무슨 진보는 진보냐, 기껏해야 개혁보수세력이지'라고 비판하니까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가 '진보가 노무현 정권 같은 중도 자유주의 세력을 껴안지 않으면 수구보수세력에게 완전히 정권을 내주게 된다'며 걱정한다. 이 좌충우돌 논쟁들 간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화려한 '말빨'들이 횡행한다. 지나친 국가주의적 분석이라느니, 도구주의적 좌파이론이라느니, 민중민주주의적 실천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느니 등등. 80년대 좌초했던 학생운동의 그 허구적 이론들, PD니 NLPDR이니 하는, 이른바 사구체 논쟁의 또 다른 연장이 20년 뒤인 지금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논란들, 논쟁들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이게 무슨 귀신 난리통인가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논쟁의 귀퉁이라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예 못알아들으면 관심이라도 가지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딴나라 얘기 취급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80년대를 경유한 세대는, 아무리 공부를 게을리한지 오래됐다 한들, 알아들을 건 다 알아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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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을 어떻게 묶든, 또는 해체하든 지금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후배들을 자르지 않고, 기업이윤을 왕창 남기지 않더라도 열명 안팎의 회사 식구들의 생계와 노동을 보장하며, 그들의 복지를 조금씩이나마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다. 차를 팔고, 편집기를 팔고, 심지어 카메라까지 팔아야 하는 시기에 진보가, 혹은 보수가, 더 나아가 이념논쟁이 얼마나 구체적 삶의 진실을 획득할 수 있겠는가. 그건 다 쓸데없는 얘기일 뿐이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생각처럼 이제는 좌파나 우파나, 맑시스트나 파시스트나 진정한 인류의 적은 인류의 구체적 삶을 담보로 자파의 정치적 이익만을 확대하려는 자들이다.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오지 않았다. 인간의 구체적 역사가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변화시켰을 뿐이다. 구체적 삶을 도구로 구현되는 변증법이야말로 진정한 정반합의 세계, 진정한 발전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보논쟁? 그거 다 얼어죽으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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