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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아들 딸들은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발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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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아들 딸들은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발견했나

[특집] 훌라걸스 vs. 빌리 엘리어트

일본 내 각종 상을 석권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아오이 유우가 출연해 화려한 훌라춤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재일교포인 이상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 <훌라걸스>가 최근 개봉했다. 영화가 여러 가지 면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연상시키는 건, 단순히 폐광의 위험에 처한 탄광촌의 아이가 춤을 추며 꿈을 얻는다는 기본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는 환경과 사정이 다른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몰라요."라고 외치며 반항을 한달지, 부모 앞에서 마치 시위하듯 춤을 춤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한달지, 이를 계기로 부모가 반대의 뜻을 접고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 아이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등, <훌라걸스>의 많은 장면들과 요소들이 <빌리 엘리어트>와 똑 닮아있다. 그러나 두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폐광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과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빌리 엘리어트 ⓒ프레시안무비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광부들은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소위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퇴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광부들이 가장 괴로운 것은 가족의 생계와 생존의 문제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딸들의 꿈과 미래가 고사되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브래스드 오프> 때만 해도, 그들은 탄광노동자였고, 변함없이 탄광노동자로 남는다. 그런데 그런 광부의 아들 딸들은 예술가가 되고 싶어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는 폼나는 색스폰 연주자가,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화려한 발레리노가, <훌라걸스>에서는 훌라 댄서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서비스 산업과 여가 산업이 각광받는 사회로 접어든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광부의 아들딸들이 모두 '예술가'가 되고싶어 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바야흐로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배경이 훨씬 앞서긴 하지만 제작년도는 더 늦은 <훌라걸스>에서, <빌리 엘리어트>가 보여준 사회학적 인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예컨대 <빌리 엘리어트>에서 파업중인 광부들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대처에 대한 분노와 피켓 라인을 넘은 자들에 배신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계집애들이나 하는 짓'인 발레에 대한 혐오감은 기본적으로는 호모포비아와 '여성적인 것'에 대한 경멸의 시선에 의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우아하고 약해빠진 윗계급'에 대한 혐오 역시 포함돼 있다. 빌리가 오디션을 보러 가서 주먹질을 휘두르게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혐오감이 인물들의 갈등과 화해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아이의 꿈을 위해 이제까지 자신이 가졌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꾸고, 동료를 배반하기까지 하게 되는 아버지의 절절함이 묻어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의 눈부신 도약 장면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계급 상승'의 이미지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장면 때문에 <빌리 엘리어트>는 고단한 노동자들을 위한 최상의 판타지가 된다.
훌라걸스 ⓒ프레시안무비

반면 <훌라걸스>는 폐광과 이로 인한 변화 및 변화에 대한 적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각 인물간의 개인적인 갈등과 화해에 주력한다.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보지도 못하는 데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보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강짜'나 놓는 듯 그려진 노조는 조금 유감이지만, 예컨대 첫날부터 술에 잔뜩 취한 채 나타나 그저 심드렁하게 구는 선생님이 아이들과 연습을 해나가며 조금씩 바뀌는 과정, 서로 투닥거리던 기미코의 오빠와 선생님이 큰 사건 없이 조금씩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해가는 과정, 그리고 하와이안 센터 건립을 반대하던 조합 소속 광부들과 센터에 고용된 사람들 사이의 화해 등은,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는 것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마을을 떠나려는 선생님을 찾아간 아이들이 훌라춤의 동작으로 사랑을 전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관객은 없으리라. 그렇기에 영화에서 마지막 훌라춤 공연 장면은 <빌리 엘리어트>의 장면과 달리, 주인공의 행복과 만족감을 나타내는 장면이 될 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축제가 된다. 게다가 10대 여자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얼마나 예쁘고 기분 좋은 소리인지 이 영화만큼 새삼 일깨워주는 영화도 흔치 않다. 이제는 일본의 유명 휴양지가 된 조반 하와이안 리조트의 기적은 그렇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춤에 대한 열정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소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영화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너무 당연한 듯 얘기한다는 것. (이것은 그렇게까지 쉽고 당연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녀들의 그 눈망울과 도전 정신이야말로, 이 영화를 더없이 예쁘고 감동적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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