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전설적인 컬트 클래식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의 개봉을 앞두고 방한, 6일 오전 씨네큐브기자회견을 가졌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작품과 영화세계, 그리고 영화철학에 대해 시종일관 유머감각을 잊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고 열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흰 머리와 주름살이 아니라면 여든이 가까워 오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정하며 '젊은 열정'을 과시하는 그는, 인자하고 선량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과연 한 시대를 풍미한 '컬트 대마왕'답게 카리스마가 넘쳤다.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자신 영화가 매번 당대의 영화들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며 자신의 영화들에 대한 컬트 감독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낸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영화는 자신을 보여주는 것도 마약도 아닌 '치유'를 위한 것, 의식을 깨우는 도구라는 자신의 영화철학을 피력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숙제가 많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작'을 할 수는 있다."는 소망을 드러낸 그는 한국영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국영화의 다양한 테마와 기술력에 놀랐다며 기회가 된다면 한국 감독과 작업해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이날 저녁 칠레 대사관저에서 마련된 영화 저널리스트들과의 조촐한 만남도 가졌다. 이 모임에는 이광모 감독, 본지 오동진 편집장, 영화평론가 이명인, 하재봉 씨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기자회견에서 가진 조도로프스키 감독과의 일문일답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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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 (사진제공:티켓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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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작 <판도와 리스>는 원래 연극을 위한 대본이라고 들었다. "원래 연극대본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이미 연극으로 무대에 올린 적도 있다. 연극 때의 경험을 가지고 나중에 영화로 만든 것인데, 영화는 자본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시 주중에 일하여 번 돈으로 주말에만 영화를 찍곤 했다. 당시 멕시코의 일반적인 영화들과 많이 달랐던 탓인지 개봉하자 다들 감독을 죽이겠다고 덤벼들었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된 장면은 소녀가 돼지를 낳는 장면이었다. <판도와 리스>가 데뷔작 맞다. 20대 때 판토마임으로 만든 영화가 한편 있긴 한데, 잃어버렸다가 최근 조금씩 상영되고 있긴 하다."
- 집단적 광기, 대중을 기만하는 상부구조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러시아계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영향을 주었는가? "생물학적으로 러시아 인의 피가 섞인 것은 맞지만, 나는 칠레 출신이고 라티노이다. 사람들은 나를 초현실주의자라 부르기도 한다. 사회적 문제가 많이 드러난 것은 <홀리 마운틴>일 텐데, 이는 세상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것이다. 종교전쟁이랄지 남성의 성형이랄지, 영화 속에서 예견한 게 지금 모두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난 예술가니까."
- 영화가 만들어진 30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늙어버렸다. 하지만 내면은 더 젊어졌다. 그땐 마치 평생 죽지 않을 사람인 것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내가 죽을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한 보석같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도 예전엔 무심했지만 요즘은 여행 때 만나는 친구 같달까. 개인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이 고통이 끝나면서,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세상을 바꾸고 싶은데, 숙제가 많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이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발걸음 뿐이다. 우리가 지구를 죽이고 있다는 의식, 인간이 자신의 스승인 동물을 죽여서 먹고 있다는 의식, 인간이 로봇화되고 있다는 의식, 우리가 살고있는 곳이 대도시가 아니라 시멘트 무덤이라는 의식, 정치가는 마리오네뜨(꼭둑각시 인형)일 뿐이라는 의식, 인생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식, 우리에겐 우주를 지탱할 힘이 있고, 사람을 존중해야 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식 말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자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치유를 위한 것이다. 영화는 마약이 아니라 의식을 깨우는 도구다. 나에게 있어 영화는 액션영화에 나오는 리볼버 권총도, 누군가의 머리통을 차주는 것도 아니다. 의식을 찾는 게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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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중인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 |
- 아픈 기억이겠지만, 열심히 준비하던 <듄>과 <네이키드 런치> 프로젝트가 결국에는 각각 데이빗 린치와 데이빗 크로넨버그에게 갔을 때 많이 힘들어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어떤지? "별로 아쉽지 않다. 무언가 할 수 없을 때에는 다른 것을 해야 한다. <듄>에서 하고 싶었던 내용들은 만화 작업에서 했고, 아마 . <뫼비우스>같은 작품은 한국에도 소개됐을 것이다. 영화가 아닌 다른 매체의 예술을 통해서 그런 갈증을 풀었다. <듄>에서 함께 일하기로 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스타워즈> 같은 영화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은데, 좌절이란, 길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 영화화 하고픈 다른 원작이 또 있는지? "나는 내 각본을 써서 영화로 만드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영화감독이라면 각본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아마 <엘 토포>에서 연결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치유'를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 남은 일정 동안 어떤 계획이 있는지? "글쎄, 무얼 할까. 모르겠다. 5일 정도만 있다가 간다. 긴 여행을 하기에는 이제 내 관절이 버텨주질 않기 때문에 10일이 넘는 영행은 힘들다. 한국에 온 것은,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영화는 하향 단계이다. 매번 같은 철학과 장면을 반복하고, 같은 기법만 쓴다. 그런 영화는 13살짜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이젠 지겹다. 영화라는 매체에 있어 새로운 것, 참신한 것은 바로 한국에 있다. 한국의 영화 테크닉과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이 많다. 기존 영화들과는 다르기 때문인데, 현재 한국영화는 일본영화와 홍콩영화를 넘어선 상태이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을 좀 만나고 싶다."
- 재미있게 본 한국영화는 어떤 게 있는가? 만나고 싶은 한국 감독은? "많다, 너무 많다! 매일 밤 영화를 한편씩 보는데 요즘은 거의 동양영화들이다. 보통 DVD로 영어자막을 틀어놓고 본다. <왕의 남자>를 봤고, <괴물>, <음란서생>,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한반도>, <섬> 등을 아주 인상깊게 봤는데, 그 다양한 테마에 놀랐다. 정치적인 문제들을 상업영화로 풀어내는 방식이 아주 훌륭하다. 한국사람들은 한국영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알고있나 모르겠다. 촬영기법도 궁금하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 <왕의 남자>를 만든 감독과는 이미 만날 약속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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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토포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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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토포>에 실제 아들이 출연한다고 들었다.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제 40대가 되었고 딸을 둘을 두고 있는데, 모두 연극을 한다. 아들이 둘이 더 있는데 모두 연극을 하고, 화가이기도 하다. 막내는 락음악을 하는 밴드를 하고 있다. 아마 <엘 토포>의 속편을 만들게 된다면, 내 아들 셋이 모두 나올 것이다. 작년에도 연극을 한 편 하며 온 가족이 출연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집안 전통과 같은 것이다. 나와 함께 한국에 온 내 인생의 여인도 화가인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집안 모두가 예술가라니! 난 내 자식들이 산업계에 종사하길 원했는데 말이다. 내 아버지가 신발을 만드는 분이셨는데, 만약 나 역시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었다면, 공중을 떠다니는 신발을 만들었을 것이다."
- 영화에서 키높이 구두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헤어스타일이나 키높이 스타일, 그리고 고딕 스타일 패션 – 까만 화장과 까만 매니큐어 등 – 도 모두 상상을 해서 만든 것인데 모두 실제로 생겨났다. 스페인에는 전통적으로 괴물을 그린 화가들이 많았다. 고야도 그렇고, 난쟁이들을 그린 벨라스케스도 있고.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장면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8살 때 프랑켄슈타인이나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을 보고 마음에 들어했고, 피카소 이후로 전통적인 미의 개념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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