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40대 여성, 20대 남성과 사랑에 빠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40대 여성, 20대 남성과 사랑에 빠지다

[북앤시네마] 잠들지 않은 진주

연상연하 커플이 아무리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연상연하의 로맨스는 대개 3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로맨스다. 결혼 안 한 과년한 여성을 비하하여 칭하던 '노처녀' 혹은 '올드미스'라는 말이 이제 좀더 화려하고 긍정적인 뉘앙스의 '골드미스'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곧바로 비혼 여성을 긍정하고 중년 여성의 성과 사랑을 긍정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직 결혼을 안 한', 즉 언젠가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전제를 담은 '미혼'이란 말이, '결혼하지 않는'의 뜻을 가진 '비혼'이라는 말보다 더 익숙하다. 연상연하의 로맨스가 대개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규모로 비혼 여성이 등장한 것이 지금의 30대 여성들부터이기 때문일 터이지만, 그들이 '곧 결혼할' 것임을 우리 사회가 전제해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나이든 여성을 '여성'이 아닌 무성의 존재인 '아줌마'로 분류하는 나이 기준이 예전의 30대에서 이제 40대로 밀려 올라간 것뿐이고, 30대 여성들이 결혼을 않고 있는 것은 제짝을 아직 못 만났기 때문으로 공식화된다. 그렇기에 한국의 여성들은 비혼의 상태에서 40대에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소설로든 영화로든 사회적인 역할모델을 접한 바가 거의 없다.
[잠들지 않는 진주]가 특이한 것은, 우리 사회에선 아직 낯선 존재, 바로 '40대 중반 비혼 여성'의 사랑과 성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20대에서부터 자신의 작업을 시작하여 이제 40대 중반, 안정적인 판화가의 삶을 살아가는 독신 여성이 있다. 이름은 사요코. 자신의 나이 또래인 그림상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단골 가게에서 17살 연하의 젊은 영화감독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후 외관상으로는 흔하디 흔한 로맨스 소설의 플롯을 따라간다. 이들은 불륜의 관계가 아니기에 도덕적인 비난과 금지의 속박 아래 놓이지는 않지만, 방해자가 나타나 갈등을 야기하고, 각자 이전 사랑의 상대자가 등장해 긴장을 조성하며, 이들의 사랑은 역경을 맡기도, 흔한 오해에 휘말리기도 한다. 심지어 이별도 한다. 그러나 시련이 강할수록 이들의 사랑은 더 단단해진다. 결국 다시 만난 이들은 해피 엔딩의 사랑을 맺는다. 4, 50대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흔하다. 불륜이건 아니건, 이런 커플의 사랑은 보통 극단의 비극적인 낭만성을 획득하고 결혼 제도의 모순을 공격하는 근거가 되곤 한다. 그렇기에 일견 이런 커플의 사랑은 사회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도의 희생양으로서 동정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별이 바뀌었을 때는 좀 다른 뉘앙스가 덧붙는다.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여성의 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서, '밝히는 여성'은 원래 비난과 처단의 대상이었다. 나이든 여성의 성욕은 고개숙인 남편을 못 살게 구는 짖궂은 조롱조의 농담에서나 등장하고, 보통은 '주책'으로 가볍게 무시되었을 뿐 진지하게 고려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일본사회도 아직은 과도기인 듯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사요코가 스토커에게 '밝히는 암캐' 등의 표현으로 비난을 당하고 그 비난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보면. 또한 사요코는 외견상 30대로 오해받을 만큼 젊어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중년의 여성과 젊은 남성의 사랑은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대에 있는 독자 모두에게 상당히 안전한 판타지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젊은 남성들에게 완숙한 여인은 유사-어머니의 존재로서 안전하게 사회적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완충 장치로 여겨진다. 한편 젊은 남성은 중년 여성에게 있어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성적 매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는 존재이다. 그리고 모든 로맨스 소설은 각 소설들이 주요 독자로 삼고 있는 층의 낭만적 환상을 대리충족 시켜주는 기능을 분명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좀더 특이한 지점은, 남성 작가가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문체로 남녀 양쪽의 욕망과 환상을 다루고 있으며, 이들의 사랑이 분명 '성숙한 사랑'으로서 어떤 모범을 제시해 준다는 데에 있다. 또한 중년인 여자 주인공이 젊은 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관문을 잘 통과하기 위해 거쳐가는 그저 중간자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남들은 모르는 바로 그 사람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서로 발견하고 이를 지켜나간다. 가장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낭만적인 사랑이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 이 소설의 사요코가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인 성취도를 이미 이룬 인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하 남자를 사귀는 여성은 왜 능력이 있는가? 데이트 비용을 대신 지불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이는 그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비록 연적이 등장하고 스토커가 등장할지언정, 경제적인 문제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장면은 없다. 현실에서라면 아마도 거의 모든 연애에서 반드시 미묘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야 마는 그 중요한 문제가. 그것이, 이 소설이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싶으면서도 역시 장르소설의 한계에 갇혀있구나, 싶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