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합의에서 민주노총이 제외된 이후 양측 대화는 단절돼 있었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3년 유예하고 필수공익사업장의 대체근로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노사관계 로드맵에 반발해 총파업까지 벌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새 집행부가 들어선 것을 계기로 양측간 대화채널이 다시 열린 것이다.
이날 오전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이뤄진 만남에서 이상수 장관과 이석행 위원장은 정책입안 초기 단계부터 진지한 대화와 논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노동부 차관과 민주노총 사무총장 간의 상시적인 대화창구를 운영하기로 했다. 또 오는 3월 중순경에는 이상수 장관이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대표자들과 간담회도 갖기로 했다.
로드맵으로 얼어붙었던 노동부와 민주노총의 관계가 민주노총의 새 집행부 출범을 계기로 해빙기의 첫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노사정위 복귀는 '불발'…민노총, 특고 노동자 등 관련 TF는 참여키로
이날 만남에서는 관계단절의 원인이 됐던 '9.11합의'가 먼저 도마에 올랐다. 이석행 위원장은 "작년 9월 로드맵에 대한 노사정 합의과정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며 "끝까지 민주노총과 협의했어야 했다"고 말을 시작했다.
이상수 장관은 "일부 오해가 있었다. 대화를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노동부 차관-민주노총 사무총장의 상시적 대화 창구 마련도 이석행 위원장이 운을 뗐다. 이 위원장은 "과거 사무총장 시절에는 노동부 차관과 함께 양측간 대화 창구 역할을 했다"며 대화창구 마련을 요구했고 노동부 장관과 산별대표자들 간의 간담회도 제안했다.
이 장관은 이 위원장의 간담회 요구에 응하며 "이 위원장 당선을 계기로 노사관계가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화 채널은 복원하기로 했지만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는 불발로 끝났다. 이 장관의 노사정위 복귀 요구에 대해 이 위원장은 "노사정 간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등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지난 1999년 2월 이후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고 있다.
비록 노사정위 복귀는 무산됐지만 민주노총은 현재 노동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법안이나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 등의 현안과 관련된 태스크포스(TF)에는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KTX 등 장기투쟁 사업장 조속히 해결하겠다"
이날 만남에서는 정부와 민주노총 간 대화 채널의 구축 외에도 올해 노동계의 뜨거운 현안들 가운데 하나인 산별교섭의 제도화, KTX 여승무원 등 장기투쟁 사업장의 해결 등 현안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과 관련해 이 위원장은 노동부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요청했고, 이상수 장관은 민주노총과 긴밀한 협의를 위한 논의 틀을 마련해 조속한 해결을 위해 애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앞서 이상수 장관은 이날 오전 SBS 라디오 <김신명숙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KTX 여승무원 문제와 관련해 "여승무원 문제가 우리 사회 갈등의 상징이 됐다"며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관계부처 등과 협의해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빙기가 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하지만 양측의 6개월 만의 공식 만남이 본격적인 '봄날'로 이어지기까지는 여전히 난제가 많다.
여러 현안에 대한 노동부와 민주노총의 입장 차이가 결코 작지 않다.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노동자성 인정과 전면적인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노동자성 인정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KTX 여승무원 등 장기투쟁사업장에 대해서도 노동부가 밝히고 있는 '조속한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는 원칙적 수준으로는 달라질 것이 없다.
산별교섭의 제도화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정부가 법으로 강제해줄 것을 원하고 있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지난해 11월 통과된 비정규직 관련법에 대해 민주노총은 "재개정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회동은 대화 자체가 단절돼 있던 상황을 해소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관계자들이 생각이다. 민주노총의 우문숙 대변인은 "서로 입장차가 크긴 하지만 서로 대화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기회가 생긴 것 아니냐"며 "각종 현안에 대해 입장차를 줄여가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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