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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봐!

[이슈 인 시네마] 영국 프리시네마전, 2월 22일부터 3월 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월 22일부터 3월 7일까지 영국 프리시네마 특별전이 열린다. 이 특별전은 그간 한국에서는 별로 소개되지 못했고, 다른 영화운동들에 비해 큰 조명을 받지도 못했던 영국의 프리시네마와 뉴웨이브 영화들을 대거 소개한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국 실험영화감독이자 이론가인 요나스 매카스는 이 프리시네마에 대해 '때로는 너무 연극적이거나 클리셰를 두르고 있긴 했어도, 영국 상업영화를 젊고 새롭게 만들었으며 옛 영화와 새 영화 사이에 큰 간극을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의 특별전에서는 프리시네마의 3인방 토니 리처드슨, 린지 앤더슨, 카렐 라이츠의 대표작들인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만약에>, <장거리 주자의 고독>, <꿀맛> 등은 물론, 또다른 뉴웨이브 영화의 걸작이자 역시 앵그리 영 맨 작가인 존 브레인의 원작을 영화화한 잭 클레이튼 감독의 <꼭대기 방>, 이후 <미드나잇 카우보이>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존 슐레진저 감독의 데뷔작 <사랑의 유형>, 그리고 나중에 헐리웃에서 <수퍼맨 2>와 <속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을 연출한 리처드 레스터 감독이 연출하고 비틀즈가 주연을 맡은 <하드 데이 나잇> 등 총 10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상영작 안내 및 시간표는 서울아트시네마 공식 홈페이지 참조.
영국 프리 시네마와 뉴웨이브 영화운동이란? 1940년대부터 싹을 틔워 6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유럽의 다양한 영화운동들은 각각의 특성과 차이가 조금씩 있기는 해도, 대체로 기존 영화에 정면으로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청년 정신을 드높였으며, 당시 시대상과 사회적 현실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새로운 영화들을 꿈꾸었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 2차대전의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확산과 식민지 팽창을 시도하며 전쟁을 벌였다가 황폐화된 현실을 물려줄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들을 부정했던 청년들은, 혁명과 자유를 꿈꾸며 기성 세대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분노와 반대, 그리고 '새로운 영화'를 정면으로 내세웠다. 프랑스에 고다르와 트뤼포를 위시한 누벨 바그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비토리오 데 시카를 대표로 하는 네오-리얼리즘이 있었으며, 독일에서는 빔 벤더스와 리나 베르트뮬러, 베르너 헤어조크 등의 뉴 저먼 시네마가 있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뉴웨이브 영화가 탄생했고, 이 뉴웨이브의 전신이 바로 프리시네마 운동이다.
'프리 시네마'는 애초에 린지 앤더슨 감독이 국립영화극장(National Film Theater)에서 6회에 걸쳐 상영을 기획한 프로그램, 즉 자신과 동료들의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들을 가리키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린지 앤더슨, 토니 리처드슨, 카렐 라이츠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프리 시네마는 전후 영국사회의 고발과 노동계급 청년들의 분노와 무기력, 봉기를 주로 다루었고, 영화가 상업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고유의 예술적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갖고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는 기치를 내세웠다. 이들의 영화운동이 장편 극영화로 확장되면서 영국의 뉴웨이브 영화의 꽃이 활짝 피었고, 50년대의 영국을 휩쓴 일군의 문학작가들인 '성난 젊은이들', 일명 '앵그리 영 맨'을 탄생시켰다. 이 호칭 역시 존 오스본이 직접 각색을 맡은 희곡을 원작으로, 프리시네마와 뉴웨이브 운동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토니 리처드슨 감독이 영화로 만든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상영되면서 부여된 것이다. 존 오스본과 토리 리처드슨이 함께 세운 영화사 우드폴(Woodfall)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리처드 버튼 주연)와 <엔터테이너>(로렌스 올리비에 주연)를 내놓은 후 브라이언스톤 영화사(Bryanston Films)의 지원을 받으면서, 또한 브라이언 포브스와 리처드 애튼버러가 또다른 독립영화사인 얼라이어드 필름 메이커스(Allied Film Makers)를 설립하면서 일련의 뉴웨이브 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대체로 사실주의적 경향의 이 영화들은, 예외가 있기는 해도 다큐멘터리적 톤을 유지하며 당시 막 새로 개발되던 휴대용 카메라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새로운 청년스타들, 예컨대 알버트 피니, 톰 커트니 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영국 뉴웨이브 운동은 결국 계속되는 헐리웃 영화들의 공세에 힘을 잃는 한편 '자의식 과잉'에 함몰되었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을 정도로 경직된 주의주장에 얽매여 결국 단명한 게 사실이다. 심지어 이 운동에 참여한 감독들 중 일부는 나중에 헐리웃에 진출하여 상업감독으로 변모하거나 미국영화의 흐름에 편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뉴웨이브는 영국영화의 미학적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후 미국관객들을 겨냥한 영화들을 제작하는 동시에 유럽의 영화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 자본의 투자시장으로 전락해 버린 영국의 영화시장에서 짧지만 빛나는 영국영화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만약 프리시네마와 뉴웨이브가 없었다면, 켄 로치의 영화들은 물론, 상업영화 씬에서도 노동자들의 삶을 심도있게 성찰하고 밀착해서 그리는 현재 영국영화의 어떤 일관된 전통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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