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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불법파업이 국가 재난이라고요?"

<기자의 눈>'행자부發 대형 오보' 낳은 정부의 구시대적 사고

"오는 7월 말부터 철도나 공항, 발전소 등 국가기반시설에서 노동자의 불법파업 등으로 인해 시설 마비가 우려되는 경우 대체인력과 장비 및 군부대를 강제로 투입할 수 있게 된다"는 언론 보도가 '오보'임이 드러났다.

31일 대부분의 조간신문이 행정자치부의 보도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이같은 내용이 담당사무관의 실수에 기인한 오보로 판명됐다.

행자부는 30일 지난해 12월22일 개정돼 지난 26일 공포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나, 31일 뒤늦게 불법파업시 대체인력과 장비의 투입에는 재난관리기본법이 아니라 노동관련법이 우선하므로 노동관계법의 규정과 노사협의에 따라야 한다는 요지로, 전날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을 바로잡는 해명자료를 냈다.

이같은 대량 오보사태에 대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파업은 무조건 불온시 하는 정부의 구시대적 사고가 드러난 것"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삼성 등 국가기반시설의 불법파업에 대체인력 및 군부대 투입"?
▲ 31일 대부분의 조간신문이 행정자치부의 보도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위의 기사가 담당사무관의 실수에 기인한 오보로 판명됐다. ⓒ프레시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태풍 및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예방 및 신속한 대응 및 대책 추진을 위한 법률이다. 그러나 30일 배포된 행자부의 보도자료는 노동자의 불법파업까지도 큰 틀에서의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

이같은 보도자료를 접한 기자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노동자의 파업을 과연 국가의 재난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은 논란의 가능성이 있으니 우선 제쳐두자. 설령 노동자의 파업을 국가 재난으로 보더라도 관련된 현행 노동관계법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것이 재난관련법으로 다뤄질 문제인가?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에는 이미 불법적인 쟁의행위에 대해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근로 투입 여부는 개별 사업장의 사업주가 결정하는 문제로 돼 있다. 그런데 30일 행자부 발표에 따르면 각 개별사업장의 파업에 대해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이 나서서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행자부는 심지어 "이번 조치로 향후 노동자의 파업 등으로 국가기반시설의 가동이 마비되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행자부는 국가기반시설 지정대상의 예시로 에너지·정보통신·교통수송·금융·의료 및 보건 등 9개 분야를 특정해 설명했다.

민간기업의 포함 여부 및 구체적인 사업장의 범위까지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행자부의 발표는 기존의 노사자율의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고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엄청난 사안이었다. 일부 언론은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일부 민간기업까지 국가기반시설에 포함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근거 법조문은 어디에?…노동부 "어찌 된 영문인지…"

하지만 행자부 보도자료와 달리 개정된 법률안 어디에서도 '노동자의 불법파업을 국가 재난으로 판단한다'는 근거 법조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노사자율로 대체근로 투입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현행 노동법과의 충돌에 대한 대응책을 묻기 위해 노동부 관계자들과 통화를 시도한 결과, 노동부는 "행자부의 보도자료가 잘못됐다"며 행자부발 법률안 내용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날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재난관리법은 자연재해 등의 재난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지 특정 사업장의 쟁의행위에 직접 개입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 아니다"면서 "노동 3권은 헌법에서도 보장된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당연히 개별 사업장의 문제는 노동관계법이 적용되는 것"이라며 "행자부의 발표 내용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행자부 "담당 사무관이 오버했다"

행자부도 이날 오전 해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행자부는 "재난관리법상 대체인력과 장비의 투입은 노동관련법이 우선하므로 노동관계법의 규정과 노사협의에 따라야 한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행자부 관계자들도 "담당 사무관이 오버한 것 같다"고 담당자에게 책임을 돌렸으나, 전날 보도자료는 담당 사무관을 거쳐 실·국장의 승인을 받고 배포된 자료였다. 담당 사무관은 "중요한 법률안이 통과됐는데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게 하려다 보니 이렇게 확대됐다"고 해명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일부 민간기업까지 국가기반시설에 포함된다는 보도내용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담당 사무관은 "구체적인 기관의 포함 여부는 7월 25일까지 만들어져야 하는 시행령에 담길 내용으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일부 기자의 취재 요청에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얘기한 것이 확대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결국 거의 모든 언론이 1면 주요 기사 등으로 보도한 이 기사는 '행자부발 대형 오보사태'로 결론났다.

"정부의 구시대적 발상 온전히 드러낸 사건"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담당 사무관의 '실수'와 기자들의 '확인취재 없는 기사작성'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취급하고 넘어갈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해프닝은 설사 불법이라 하더라도 노동자의 파업을 국가의 '재난'으로 판단해 강제력을 동원해 '처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행자부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대 노총도 성명을 통해 행자부발 해프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노총은 "불법파업시 대체인력과 장비를 동원할 수 있다는 행자부의 생각은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사전적, 사후적 개입의지를 노골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는 파업을 불온시 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비록 행자부발 오보사태라 할지라도 "이런 발상 자체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만약 정부가 불순한 의도를 버리지 않고 노동기본권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계속할 때는 위헌소송 등 법적인 대응을 포함하여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이번 해프닝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한국노총 박영삼 대변인도 "노동자의 파업을 적대시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무조건 막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정부 인식의 단면을 드러낸 것으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 노동문제 전문가도 "언론을 통해 이미 광범위하게 '노동자의 불법파업은 국가 재난'이라는 인식을 유포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담당 사무관의 사과 한 마디로 이번 사태를 넘길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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