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에 노사정이 최종 합의했다고 13일 노사정위원회가 밝혔다.
1964년 제도 도입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되는 산재법은 서울대병원, 강남 성모병원, 삼성의료원 등 그간 산재보험 요양담당 의료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을 회피해 왔던 대형병원에 대해 종합전문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개정안은 그간 임업과 벌목업 등이 집중적으로 부담했던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의 업종별 격차를 완화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재취업과 직장 복귀를 돕기 위한 근로자 직업재활급여를 도입키로 했다.
이번 합의 당사자들은 "산재보험이 산업재해로부터 근로자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다 하도록 제도 전반에 걸쳐 개혁의 밑그림을 제시했다"며 "더욱이 4대 사회보험 가운데 처음으로 제도개선에 관한 당사자간 합의를 도출했다"고 그 의의를 부여했다.
직업재활급여 도입·최고 보험요율제 도입·저소득 근로자 보호 강화 등
노사정위원회 산재보험발전위원회는 이날 오전 제15차 본회의를 열고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재정과 징수, 요양·재활, 급여체계, 보험적용, 관리 운영체계 등 5개 분야, 42개 과제, 80개 항목에 이르는 산재보험제도 개선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40여 년 만에 개정되는 만큼 이번 산재법 개정안은 방대한 부분에 걸쳐 수정 및 도입 작업이 이뤄졌다.
산재법에 대해 꾸준히 비판과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법 개정에 공감한 노사정 대표단체들은 지난 5월 노사정위원회에 산재보험발전위원회(위원장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산재법 개혁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산재법 개혁에 대한 논의가 노사정위원회에 맡겨지면서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조직적으로 결정한 민주노총은 이번 논의에 참가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산재 사고율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산재보험지원체계는 주로 보상에만 치우쳐 있어 예방과 재활서비스가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산재 피해 노동자에 대한 보장성 강화와 보험관리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받아 들여 법 개정 논의가 진행된 것.
이번 개정 작업에서는 무엇보다 현행 제도가 산재 피해 노동자에 대한 재활 서비스 제공을 강화하기 위해 직업재활급여를 도입하기로 한 점이 주목된다. 구체적으로 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 종류에 직업재활 급여가 신설되고 산업재해 장애자에게 최장 1년 동안 최저임금의 100%가 훈련수당으로 지급된다.
나아가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50% 미만을 받는 저소득근로자의 경우 휴업급여 급여액이 현행 70%에서 평균임금의 90% 수준까지 올라간다.
이 밖에도 사회보험의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해 '최고 보험료율제'를 도입해 사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의 최고요율은 전 업종 평균보험료율의 20배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산업재해가 잘 일어나지 않은 사무 업종이 빈번한 산업재해로 인해 임금총액의 50%가 넘는 보험료를 내기도 하는 임업 등 업종과 부담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또 사업주의 확인이 없이도 재해경위와 주치의의 의학적 소견만으로 요양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업주의 날인 거부는 그 동안 사업주가 산재 처리를 미루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것이어서 이같은 제도의 도입으로 산재 환자의 보호의 길이 넓어진 셈이다. 다만 사업주는 별도의 의견이 있는 경우 근로복지공단에 이를 제출하고 필요한 경우 근로복지공단에서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했다.
노사정은 또 '종합전문요양기관 당연 지정제'를 도입해 산재 환자가 양질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일부 대형병원의 지정 회피를 막도록 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삼성의료원, 아산 중앙병원, 서울대 병원 등 전문요양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을 회피해 왔던 곳을 포함해 총 43개의 대학 부속병원급 대형병원이 전문요양기관으로 지정된다.
산업재해에서 가장 큰 논란은 이 병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논란을 공정화하기 위해 노사정은 근로복지공단의 지역본부 별로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같은 내용의 산재법 개정안에 노사정이 합의를 이룸에 따라 정부는 법 개정 준비작업에 착수해 내년 초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별도의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관리·운영 체제의 개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제도들은 200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한국노총 "산재 노동자 현실 개선 기대"…민주노총 "절차상 하자·내용은 부족"
이번 합의안과 관련해 논의 과정에 참가했던 한국노총은 "환영"의 뜻을 밝힌 반면 민주노총은 절차상 오류와 내용상의 문제를 들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합의안 가운데 한국노총은 재활급여의 도입을 "최고의 결실"로 보고 있다. 재활급여가 도입됨으로써 "산재보험제도가 현행 요양 및 보상 중심의 체계에서 직업재활 및 사회재활을 지향하는 체계로 개편됐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합의를 통해 기업의 이윤추구과정에서 비롯된 산업재해로 인해 노동자가 노동을 잃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 억울한 현실이 재조명되고 개선되기를 기대하며, 나아가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완전히 몰아내는 산재예방활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이어 "이번 합의가 노동계가 요구해 온 산재보험의 개혁을 완수하는 결과물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한국노총은 이번 합의를 기반으로 향후 2단계, 3단계의 제도개선 및 개혁 촉구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민주노총은 "이번 발표가 민주노총은 고의적으로 배제시킨 가운데 추진된 것이기 때문에 절차상 근본적인 하자가 있다"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이 내부의 문제로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산재법 개혁 논의를 노사정위원회에 일임한 것은 '민주노총에 대한 고의적인 배제'라는 것이다.
합의안의 내용과 관련해 민주노총은 "재활급여를 신설한 것이나 종합전문요양기관 당연 지정제 도입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이번 합의문은 산재법의 입법취지에는 상당히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이 제기하는 첫 번째 문제는 "산재노동자의 원직 복귀의 법제화, 근로복지공단의 심사기능 분리 요구가 누락됐다"는 것.
민주노총은 이 밖에도 노사정이 합의하지 못해 별도로 논의키로 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문제도 즉시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요양 중 부분 취업 등으로 임금이 있는 경우 평균임금과 임금 간의 차액의 90%를 지급하기로 한 '부분휴업급여 제도'의 도입과 관련해서도 민주노총은 "결국 산재 노동자의 강제 요양 종결이나 강제 근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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