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관련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총장 최민희) 은 23일 80년대 신군부에 부역했던 언론인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민언련은 "80년 5월 당시 언론은 부끄럽게도 군부독재를 정당화하고 그 재건에 앞장서는 등 신군부의 충견 노릇에 여념이 없었다"며 "신군부에 결탁한 이들 언론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대중조작의 선두에 서는 한편, 세계 언론역사에 기록된 각종 독소조항들을 집대성한 '언론기본법'의 제정에도 자신들의 지식과 경륜을 적극적으로 제공·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허문도, 남재희, 손세일, 김윤환, 신상초 씨 등을 거론하며 이들이 당시 국보위와 입법회의에 참여해 언론 통폐합과 언론인 해고를 비롯 각종 언론통제를 위한 기본 계획을 입안하고 통과시킨 장본인들이라고 지적하고 "이들은 신군부의 언론통제에 대한 '협력'을 발판으로 이후 정치권으로 진출했고, 일부는 권력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또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 이원경 합동통신 사장, 이진희 경향신문·문화방송 사장도 입법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희대의 언론통제 악법인 '언론기본법'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특히 '직접적인 기사'로 신군부에 부역을 한 인물로 김길홍, 이진희 씨를 꼽았고 5·18 왜곡보도자로 김대중, 김진규 씨를 지목했고 신군부의 쿠데타를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간접적으로 거든 언론인으로 최병렬 씨, 하순봉 씨 등을 지목했다.
이송지혜 민언련 간사는 "이번 1차 성명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기사나 보도내용을 조사하여 부역자들을 계속 공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성명서전문
***신군부의 독재에 부역한 언론인은 사죄하라**
80년 5월, 온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전두환 소장을 필두로 한 신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짓밟혔다. 당시 언론은 부끄럽게도 그 열망을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군부독재를 정당화하고 그 재건에 앞장서는 등 신군부의 충견 노릇에 여념이 없었다.
신군부는 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포고령 10호를 통해 언론·출판·보도 및 방송에 대한 사전 검열을 실시하는 등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5월 31일에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를 구성해 공식적으로 국가권력을 접수하기 시작했으며, 10월에는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이하 입법회의)라는 초헌법적 기구로 확대개편함으로써 국가의 전 영역에 대한 절대적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당시, 주요 언론사와 그 사주들 및 일부 핵심 간부들은 신군부의 요청을 기화로 신군부에 비협조적이거나 사주의 눈밖에 난 기자 717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신군부에 결탁한 이들 언론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대중조작의 선두에 서는 한편, 세계 언론역사에 기록된 각종 독소조항들을 집대성한 '언론기본법'의 제정에도 자신들의 지식과 경륜을 적극적으로 제공·참여했다. 그리고, 이후 87년 6월 국민항쟁까지 이들은 소수 군사독재 세력을 위한 '언론통제 전문가'로서 맹활약함으로써, 자신에게 언론의 살육자라는 오명을 부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허문도, 남재희, 손세일, 김윤환, 신상초 씨 등은 당시 국보위와 입법회의에 참여해 언론 통폐합과 언론인 해고를 비롯 각종 언론통제를 위한 기본 계획을 입안하고 통과시킨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신군부의 언론통제에 대한 '협력'을 발판으로 이후 정치권으로 진출했고, 일부는 권력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허문도 씨는 79년까지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 80년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국보위 문공위원 등을 거쳐 84년에는 대통령 정무수석까지 지냈다. 남재희 씨 역시 68년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79년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윤환 씨는 75년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리에서 10대 국회의원, 민정당 창당발기인을 거쳐 11대, 13대,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손세일 씨는 7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었으며, 11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신상초 씨는 74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었으며 10대, 1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 이원경 합동통신 사장, 이진희 경향신문·문화방송 사장도 입법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희대의 언론통제 악법인 '언론기본법'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들이 제도적으로 신군부의 언론통제를 뒷받침한 사람들이라면 김길홍 씨와 이진희 씨 등은 기사를 통해 신군부의 미화에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역시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김길홍 씨는 80∼81년 경향신문 정치부장을 지냈으며 80년 8월 19일부터 23일까지 4회에 걸쳐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 시리즈를 연재해 가장 먼저 전두환 찬양 기사를 썼다. 김길홍 씨는 82년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역임하고 13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입법회의 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진희 씨는 80년 서울신문 주필 당시 <역사의 무대는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쓰고 경향신문과 문화방송 사장으로 영전됐다. 문화방송 사장 시절에는 전두환 당시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한 홍보성 대담하는 등 신군부의 권력확립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5.18 광주항쟁을 왜곡하는 데 앞장선 대표적인 언론인은 김대중 씨와 김진규 씨다. 김대중 씨는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 보도했는데, 90년 이후 '5.18리포트'에 참여해 당시 자신의 행적에 대해 '유감'의 뜻 정도를 밝히는데 그쳤다. 김진규 씨는 당시 서울신문 사회부장이었으며, 95년까지 국민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대한언론인회 논설위원으로 있다.
신군부의 쿠데타를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간접적으로 거들었다고 보여지는 언론인들은 최병렬 씨, 하순봉 씨 등 상당수에 이른다. 이들은 5공 정부에서 정·관계에 진출했으며, 현재까지도 국회의원 등 사회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병렬 씨는 80년 5월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85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12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해 정부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하순봉 씨는 81년까지 문화방송 정치부장을 지냈으며, 11대부터 국회로 진출했다. 지금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80년대 '언론의 암흑기'를 만든 장본인은 신군부와 이에 직·간접적으로 부역한 언론사와 언론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어떠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신 군부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는 사회적·법적 책임이 일부나마 물어졌으나, 언론인들은 극소수가 '반성기사'를 쓴 것 외에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당시 활동을 기반으로 출세한 데 대한 반성은커녕 그 출세를 오히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징표로 간주하면서 아직까지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회 각계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5.18 광주항쟁은 이제 민주화의 이정표로 기념되고 있다. 그리고, 신군부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집단으로서 단죄되고 있다. 그러나 신군부에게 부역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앞장선 언론인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책임도 아직 묻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그 책임을 물을 때이다. 80년대 신군부에 부역했던 언론인들은 스스로 참회하라. 자신의 잘못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사죄하라. 그리고, 현재 언론계에 머물고 있는 경우, 스스로 물러나라.
2003년 5월 23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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