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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가 괴롭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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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가 괴롭든 말든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누가 뭐래도 난 지금의 한국 영화계가 위기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식상해 하고들 있을, 산업이니 구조니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몇월부터 몇월까지 박스오피스 순위를 뒤져 볼 생각 역시 추호도 없으며 올해 평균 시장점유율이 얼마인지를 따져 볼 생각도 없다. 숫자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기도 하거니와 그 숫자의 의미를 산술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영화가 이대로 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반기 들어 극장가에 걸리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트래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따위를 믿거나 말거나가 뭐 그리 중요한지, 어떤 여자가 누구누구와 잤는지 안잤는지가 뭐 또 그리 대단한 얘기인지, 미녀가 괴로운지 안괴로운지에 왜 그리도 관심이 가는지, 왜 그렇게 깡패와 건달, 조폭의 세계를 들여다 보려는 작품은 많은지(혹시 동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오해가 생길 정도로), 난 요즘 일부 한국영화만 생각하면 정이 뚝뚝 떨어진다. 못 본 영화 챙겨보겠다는 요량으로 극장으로 나섰다가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요즘의 한국영화는 나 같은 사람들의 등을 돌리게 만든다.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만들기는커녕 (화딱지가 나서)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든다. 나이 40을 넘은 일부 제작자들이 20대 여성관객들에게 '아부'하겠다며 '할리 퀸'류의 영화만을 만드는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괜히 내가 다 '쪽팔려진다'. 어떤 광고대행사 대표는 자신이 광고를 맡은 영화를 부인이 봤다고 하자 할 일 없이 그런 작품을 왜 봤냐며 화를 냈다고 할 정도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옳은 길로 가고 있는 모습들이 아니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시장점유율이니 투자환경 문제니, 멀티플렉스의 독점이니 하는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국영화의 진정한 위기는 미학의 붕괴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또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20대의 '철없는' 관객들이 당장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20대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됐을 때도 지금의 그런 영화들을 계속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만저만한 오산이 아니다. 영화가 한철 장사인가. 영화는 평생 장사가 되도 될까말까한 사업이다. 좀 길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후회하지 않아 ⓒ프레시안무비
사람들은 얘기한다. 요즘의 한국영화에는 당신이 얘기하는 그런 작품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있다고. 물론 맞는 말이다. <후회하지 않아>같은 작품이 나오고 있으니까. <방문자>도 결국 개봉을 하긴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다양한 영화들이 시장에서 다양하게 안착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기엔 등식 관계가 전혀 성립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지금의 한국영화계를 두고 다양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따로 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하여, 다시 한번 상업영화권이 문제다. 상업영화권이 욕을 먹어야 한다. 진정한 상업영화 제작자는 남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남들이 가능한 한 피해 가려는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이다. 남들이 다 하는 얘기, 목덜미가 흐물거리고 낯이 간지러워지는 얘기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나도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상업적으로 위험해진다. 너도나도 상업영화 제작자나 상업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남들 이상을 하려는, 보통을 뛰어 넘으려는 모험심과 실험정신, 예술적 결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아예 그런 길은 포기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상업영화를 추구하는 제작자라면 역설적으로 비상업영화권과 작가주의 영화권을 수시로 넘나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진짜 상업영화를 보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즐겁고 유쾌해지거나 아니면 실컷 울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산다. 통탄할 일이다. (이 기사는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에 게재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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