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화평론가 고 이영일선생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영화평론계 첫 세대로 한국영화의 전성기인 50년대에 활동을 시작해 ‘르네상스’로 불린 90년대까지 현역평론가로 글을 남겼으며 한국영화사의 ‘정사’(正史)라 할 수 있는 <한국영화전사>를 직접 저술한 영화사학자이기도 했다.
<사진- 책표지>
그의 한국영화에 대한 마지막 회상을 모은 <한국영화사강의록>이 한국예술연구소가 간행하는 ‘한국예술아카이브총서’ 제2권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그가 2001년 1월 타계하기 직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대학원)과정에서 강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지금도 각 대학의 영화과에서 한국영화사 시간에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 그의 대표저서 <한국영화전사>가 애초에 ‘글’로 쓰여져 철저한 기록과 엄밀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한국영화사강의록>은 ‘말’로 서술된 강의를 기록한 것이라 생동감과 현장감이 살아있다.
특히 영화를 둘러싼 시대상황과 문화계 풍경이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고 영화인과 작품에 대한 평가도 거침없다. 저술에서는 당대의 이야기들이 넘쳐나다 보니 다음과 같은 민감한 내용들도 곳곳에 보인다.
“(영화법은) 1964년 개정을 시작으로 1985년까지 다섯 차례나 개정을 거쳤다. 군사정부의 전문성이 결여된 입법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비공식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입법을 추진한 영화인이 신상옥이라고 알려져 있다. 군사혁명후 신상옥 최은희가 김종필에게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이 당시 화제였다. 이들이 악법을 추진했다는 것이 영화계에 파다하게 알려졌다.”(85쪽)
“1960년대에 한국은 개봉극장에서 3만명이 넘으면 장르가 됐다.”(21쪽)
“김수용은 재치는 있으나 작품이 일정치 않다. 임권택은 장면화에 능하다.”(91쪽)
“김지미의 등장을 계기로 한국의 멜로드라마가 현대적으로 탈바꿈했는데 한복이 아닌 양장을 입어도 긍정적인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의상의 변화가 상징적이다.”(69쪽)
“이만희는 ‘7인의 여포로’에서 국군을 희화화한다는 혐의로 반공법에 걸렸다.”(87쪽)
고인의 주 저서인 <한국영화전사>가 한국영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정사(正史)라면 ‘한국영화사강의록’은 한국영화와 영화인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야사(野史)로서 영화학도와 예술사학자, 평론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강의록을 책으로 펴낸 ‘한국예술연구소’(소장 안규철)는 앞으로 원로예술인, 평론가들로부터 기증받은 방대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정리·연구하여 그 성과물을 계속 책자로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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