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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트랜스아메리카 Transamerica

감독 던컨 터커 출연 펠리시티 허프만, 케빈 지거스 수입,배급 인터비스앤파트너스 | 등급 18세 관람가 시간 103분 | 2005년 | 상영관 중앙시네마 뉴욕타임즈의 A.O. 스콧 말마따나 미국영화는 요즘 길 위에서 치유의 방법을 모색 중이다. 스파이크 리의 <25시>가 그랬고 카메론 크로우의 <엘리자베스타운>이 그랬으며 빔 벤더스의 <랜드 오브 플렌티>가 그랬다. 국내에 다소 뒤늦게 개봉한 영화 <트랜스 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 속 주인공 브리와 토비 역시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뉴욕에서 LA로 동서를 횡단하며 자신들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그것을 아물게 하려고 애쓴다. 그 노력이 눈물겹다. 주인공 브리(펠리시티 허프만)는 일주일후면 자신이 그렇게도 역겹게 여기는 남근을 잘라내고 여자로 탄생하게 된다. 이 가녀린 여장남자는 피닉스의 비교적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LA에서 어렵게 살아가며 수술비를 마련했으며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운명은 얄궂은 장난을 친다. 브리에게는, 기억도 못하는 과거 어느 날, 한 레즈비언과 '만들어 낸' 18살 난 아들 토비(케빈 지거스)가 있었던 것. 절도와 마약, 남창 혐의로 뉴욕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토비를 빼낸 브리는 자신이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기고 그와 함께 LA를 향해 대륙횡단 길을 떠난다.
트랜스아메리카 Transamerica ⓒ프레시안무비
집에서도 버림받고 사회에서도 냉대를 받아 온 여장남자와 비록 같은 이유는 아닐지언정 역시 사회에서 철저하게 내팽개쳐진 청소년의 동행길은, 예상했던 대로 암초투성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과 똑 같은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듬어 내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의 상처만으로도 버거우니까. 또 다른 상처를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지겨우니까. 남의 상처 때문에 자신의 상처가 더 곪을지도 모르니까. 영화 속 브리나 토비 역시 마찬가지다. 브리는 브리대로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그렇게도 소원하는 여성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토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토비는 토비대로 남자 성기를 갖고 있으면서 여자로 살아가려는 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난의 여행길은 두 사람을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게 만든다. 그렇다면 브리가 토비에게 느끼는 것은 부성인가 모성인가. 토비가 브리에게 끌리기 시작하는 것은 여성 브리에 대한 이성애적 관심 때문일까, 아니면 남성 브리에 대한 동성애적 관심 때문일까. 이 문제에 대해 영화는 명쾌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애초부터 이런 문제에는 정확한 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관습적으로 살아 온 우리의 통념으로는 이 둘의 관계를 규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이 새롭게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관계'를 해체시켜야만 한다는 점을 영화는 보여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 가능한 일이며 '새로운 세상'이 가능해질 수 있다. 성의 문제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사회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좌파 여성해방론자 로빈 우드의 얘기는 이 영화에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다. <트랜스 아메리카>를 두고 부드럽고 사려 깊으며 따뜻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지언정 그 안으로는 미국사회의 급진적 체제변화를 꿈꾸는, 강한 폭발성을 지닌 작품이라고 하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남자 배우의 여장남자 역할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는 것은 여자 배우가 여장남자 역할을 해 낸 이 영화를 보면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미모의 중년 여배우인 펠리시티 허프만의 여장남자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그녀는 진짜 트랜스젠더처럼 보인다. 분장도 기가 막히지만 트랜스젠더 특유의 제스처, 목소리, 스타일 등등 어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최고의 연기를 구가하는 배우의 영화를 보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다. <트랜스 아메리카>는 근래에 소개된 외화 가운데 가장 빛이 나는, 그래서 지루한 삶에 한줄기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느냐 안 보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보지 않으면 그만큼 인생에 큰 손해가 될 영화다. 괜히 손해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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