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의, 풀꽃평화연구소, 교보문고가 주최하는 '2006 환경 책 큰 잔치'는 오는 17일 개막된다. 이 행사는 시민들이 환경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2002년에 시작됐다.
<프레시안>은 '환경 책 큰 잔치' 실행위원회와 공동으로 11월 한 달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이번에 선정된 환경 책 29권에 대한 서평을 싣는다. <편집자>
<생태학의 담론>, 문순홍 지음, 아르케, 2006년.
"문순홍은 이 땅에서 '생태학'이라는 말을 사회과학과 접합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이 책의 저자 문순홍(1957-2005)에 대해 젊은 학자들이 압축적으로 내리고 있는 평가다. 2005년, 더 일할 좋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마로 우리 곁을 떠나버린, 평생 공부밖에 몰랐던 이 아까운 학자에게 후학들이 다시 덧붙인다. "그는 한국의 정치생태학의 기초를 닦았고 생태여성론의 틀을 세웠다"고.
이 책은 1999년 말 문순홍이 엮어 출간한 <생태학의 담론: 담론의 생태학>(솔)의 후속작업이다. 1999년 <생태학의 담론>에서는 주요 생태사상가들의 핵심적인 주장을 번역해 소개했다면, 2006년도 아르케판 <생태학의 담론>에서는 이 부분을 문순홍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한국사회에 주는 함의를 찾는 시도로 재구성하였다. 여기에 문순홍이 생전에 만나 탐색했던 머레이 북친과 울리히 벡의 사상을 소개한 두 편의 글을 다듬어 추가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손으로 만질 수 없었다. 이 작업이 정규호(한양대 제3섹터 연구교수), 오수길(한국디지털대 정보행정학과 교수) 등 동료와 후학들이 순정한 마음으로 묶어낸 유고선집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문순홍은 근본 생태론, 사회 생태론, 생태 마르크스주의, 생태 발전론, 생태 지역론, 생태 여성론, 김지하의 생명론, 지속가능 발전론 등 1970년대 이후 사회과학을 재정향화하려는 시도로서의 새로운 생태 패러다임을 생태 담론 차원의 논의로 풀어내고 있다.
'관리주의' 담론 정도의 차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이 책은 생태사상의 역사와 의의를 다시금 고착시킨 의미가 깊다. 문순홍은 단지 대안적 생명정치의 이론만 파고 든 책상물림은 아니었다. '생명의 감수성을 갖게 되면 인간과 사회의 자기이해는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는 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운 곳으로 이행하기 위해 정직한 자세로 노력했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가 공부하고, 마음 고생했던 시간은 비록 짧고 가팔랐지만, 그의 주저인 이 책의 울림과 파장은 그가 머물렀던 '지상의 시간'보다 오래, 널리 확산될 것이라 믿는다.
2006년 환경책큰잔치 실행위원회에서는 먼저 떠난 고인을 추모하고, 고인이 남긴 책과 활동을 기억한다는 작은 표시로 생태정치학자 고 문순홍 선생과 도서출판 달팽이의 김영조 대표에게 '한우물상'을 시상했다. 환경책큰잔치 실행위원회는 2003년부터 우리 사회의 환경문제를 일찍부터 고민하고 애써 온 환경운동가, 생태학자, 환경전문출판사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한우물상'을 시상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도서출판 따님의 송대원 대표(2003), 수문출판사의 이수용 대표(2003), 도서출판 그물코의 장은성 대표(2004), 환경책 전문번역가 이한중 선생(2005) 등이 한우물상을 받은 주인공들이다. 아래는 <생태학의 담론>의 저자 고 문순홍 선생에게 드린 한우물상의 전문이다. 한우물상 생태정치학자 문순홍 우리 모두 생명의 감수성을 갖게 된다면 '인간의 자기이해'는 달라진다고 믿었던 사람. '인간의 자기이해'가 달라진다면 인간은 자연 앞에서 좀더 겸손해지리라 믿었던 사람. 공부를 통해 공부가 사랑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썼던 사람. 말할 수 없이 자신에게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언제나 밝게 웃고 친절했던 사람. 읽기 힘든 글을 썼지만 동료와 후학들에게는 줄을 긋고 읽을 책을 남긴 사람 길에서 만난 어려운 이에게 지닌 돈을 다 털어준 뒤, 집에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던 사람. 대학이 '대학강사'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착취할 때 일찍부터 분노를 표했던 사람. 대학이라는 밥벌이의 장을 원했으나 거기 스며들기 위한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시몬느 베이유처럼 먹는 것 입는 것에는 무관심했던 사람. '바람과 물 연구소' 소파에서 공부하며 새우잠을 자다 새벽녘 후배에게 발견되었던 사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했던 사람들을 바다 넘어서라도 찾아가 만났던 사람. 평생 돈을 벌어보지 못했던 사람, 가난했지만 꽃처럼 웃었던 사람. 일찍 찾아온 병마와의 싸움 속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사람. 사람이 아니라 학문과 연애하다가 끝내는 학문보다 중요한 것을 발견했던 사람. 그것이 결국은 '사랑'이었다고 미소 지으며 말했던 사람. 그 사람을 환경판과 공부판에서는 "문순홍은 이 땅에서 생태학이라는 말을 사회과학과 접합시킨 최초의 인물이다"라는말로 요약했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그가 혼이 맑고 겸손했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가 일찍 떠난 것을 우리 환경운동판의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가 너무 일찍 떠난 것을 우리 여성운동판의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다시 웃고 이야기 나눌 수 없게 된 것을 우리는 우리 삶의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우리는 애초부터 감사와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기로 작정했던 한우물상을 통해 그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그가 남긴 몇 권의 책과 함께 그의 맑고 깨끗했고 정직했던 삶이 우리에게 준 귀한 선물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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