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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BBC를 구할 수 있었던 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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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BBC를 구할 수 있었던 힘은?

[화제의 책]BBC 전 사장 그렉 다이크 회고록

<BBC 구하기>(그렉 다이크 지음. 김유신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는 영국 BBC 전 사장인 그렉 다이크의 회고록이 한국의 국가기간방송인 KBS가 사장 선임 문제를 놓고 정치적 공방을 거듭하고 있는 국내에 번역 출판돼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토니 블레어 정부가 이라크전 참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부 정보를 조작했다는 BBC 국방부 취재기자 앤드루 길리건의 2003년 5월 보도를 둘러싼 다이크 사장과 블레어 정부의 갈등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론 노동당 지지하지만 BBC 사장 입장에선 공정해야"
▲ ⓒ프레시안

당시 블레어 정부는 길리건 기자의 보도에 대해 '오보'라며 기자와 BBC를 비난하고 나섰지만 다이크 사장은 길리건 기자를 적극 감쌌다. 다이크 사장은 방송계에 진출하기 전인 20대 후반에 노동당 후보로 런던 시의원 선거에 나섰던 이력이 있고 매년 노동당에 후원금을 낼 정도로 열렬한 노동당 지지자이지만 블레어 정부와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심지어 개인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BBC 사장으로 전쟁의 원인이 된 일련의 사태와 전쟁 그 자체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도하는 일에 충실하기 위해 정부의 외압에 굴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와 BBC의 공방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졌고, 8개월 뒤 일방적으로 정부 편을 든 '허튼 보고서'가 발표돼 다이크 사장은 2004년 1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다행히 그가 물러난 지 얼마 안 돼 정부가 이라크 관련 정보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 그의 명예는 곧 회복됐다. 이에 앞서 그가 퇴진하던 날 BBC 직원 3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사장 퇴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사비를 털어 일간지에 다이크 사장을 지지하는 전면 광고를 내던 그 때부터 그는 정부와의 진실게임과 상관없이 이미 '승자'였다.

"모든 채널은 궁극적으로 무상으로 제공돼야"

하지만 그가 무기력하고 늙은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BBC의 '부활'을 이끈 힘을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만 찾는 것은 단편적인 해석이다.

그가 BBC를 구할 수 있었던 힘의 밑바탕은 오히려 그가 주도한 BBC 내부 개혁에 있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관료주의와 비효율의 상징인 긴 보고서를 최대한 짧게 줄일 것을 지시했다. 내부 개혁을 위한 소규모 회의체인 'BBC 하나 되기 팀'을 만들어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쓸데없는 내부 지출도 줄이도록 하는 등 효율성을 높였다.

이렇게 줄인 연간 4억8000파운드의 돈을 그는 시청률이 저조한 BBC1 채널을 회생시키고 새로운 디지털 채널을 개설하는 데에 썼다. 그는 어린이 채널 두 개와 청소년 채널, 문화 채널을 출범시켜 방송의 공공성을 높였다.

그는 특히 "모든 채널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원칙에 기반해 이 같은 사업 확장을 꾀했다.

그는 또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영국인 고유의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는 영국 채널이 장악해야 한다"는 원칙도 강조했다. 그는 풍부한 인력과 자본을 가진 미국이 세계 방송시장을 장악하는, 나아가 미국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날이 오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루퍼트 머독은 개인 이익 위해 민주주의 파괴"

다이크 사장은 이 책에서 미국, 영국, 오스트리아, 라틴아메리카 등 전 세계 언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의 존재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머독은 영국의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 <선(The Sun)>, <타임스(The Times)> 등을 소유해, 영국 일간지 발행부수의 35%, 주간지 시장의 41%를 장악하고 있다.

"머독은 이라크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그가 운영하는 175개 신문도 모두 그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 머독이 미국에서 운영하는 뉴스 전문채널 폭스 뉴스(Fox News)는 노골적으로 우익 성향을 표방함으로써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이라크 전쟁 중에 시청률이 300% 상승해 시장을 주도하던 CNN을 앞질렀다. CBS 뉴스 사장 핸드루 헤이우드는 폭스 뉴스의 성공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미국 저널리즘의 전통이 폭스의 영향으로 위협 받고 있다고 말했다. (…) 영국 노동당과 자유당은 이런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뉴스를 공정하게 보도하는 영국의 전통에 종말이 올 것이다. (…) 머독은 자기 자신의 세력과 개인적인 사업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민주적인 절차를 파괴하는 길을 택했다."

한미 FTA 등으로 방송 시장뿐 아니라 정기간행물 시장의 개방 압력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머독 제국'의 위협에 대한 다이크 사장의 우려는 더이상 남의 나라 얘기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다이크 사장은 이 모든 개혁을 BBC 내부 구성원들의 공감대 속에서 진행하려 애썼다. 그는 BBC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내부에서 문화혁신 운동을 벌였고, 백인 남성 일색이던 BBC 간부 자리에 여성 등 소수자를 대거 기용했다. 4년 만에 BBC 직원 비율을 영국 인구 비율에 비슷하게 맞춘 것도 그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사립 명문학교를 졸업한 귀족 출신의 역대 BBC 사장과는 달리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공립학교를 졸업한 그가 BBC 사장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롭다. 실력 못지않게 운도 따랐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그는 "내가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실패를 생각해볼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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