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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길

감독 배창호 | 출연 배창호, 강기화 제작 이산프로덕션 | 배급 스폰지 | 시간 95 분 | 2004 상영관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 명백하게 페데리코 펠리니의 1954년 동명작품을 연상케 하려는 배창호 감독의 신작 <길>은 영화 만들기에 있어 작가적 고집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요즘 세상엔 꿈도 못꿀 '단돈' 5억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든 제작이 끝난지 3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거의 단관 수준으로 개봉되는 것 때문에? 단순히 그렇게 외적인 조건때문만이 아니다. 영화 안을 들여다 보면 점점 더 외골수의 길을 가려는 작가의 마음, 그럼으로써 비록 독야청청일지라도 지금의 영화판에 항변하려 하는 작가의 외침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길 ⓒ프레시안무비
배창호 감독이 시나리오에서부터 감독과 주연까지 도맡은 영화 <길>은 대장장이 태석의 인생유전을 그린 내용이다. 20년동안 각지의 장터를 떠돌며 살아 온 대장장이 태석(배창호)은 어느 날 빈털터리가 된 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온 어린 소녀 신영(강기화)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가슴아픈 과거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의 기억속 과거에는 죽마고우 친구 득수(권범택)가 있고, 무엇보다 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아내(설원정)가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득수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한 후 태석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언뜻 보면 매우 오울드하면서도 신파 정서가 가득한 이 영화는, 그럼으로써 오히려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것이 갖는 내면의 정서에 더 주목하도록 의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가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면 알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단순하게, 또 점점 더 신파적으로 꾸미는 법이다. 젊었을 때는 화려한 이야기가 좋은 법이다. 배배꼬인 이야기가 더 그럴듯 해 보인다. 하지만 삶의 한 고개를 넘어간 작가에게는 그것이 결국 얕은 유혹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삶이란 단순하고 우직스러움 속에서, 남들이 살아가듯 똑같은 평범함 속에 진실이 담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삶의 깨달음을 얻은 작가는 의도적으로 날을 세우지 않는다. 무딘 칼을 가지고도 충분히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딘 칼이 오히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창호의 <길>은 그래서, 영화속 수려한 풍경을 통해 제목처럼 스스로가 로드 무비임을 드러내긴 하지만, 여기서의 길은 단순히 물리적인 '길'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길' 그러니까 '방법(way)'을 가리키는 것임을 궁극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속에서 거의 부감 샷으로 찍혀진 배창호의 길이 직선인 적이 한번도 없는 건 그때문이다. 그의 영화속 길은 한국의 토속성을 보여주듯 늘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다. 산등어리를 휘감는 길들을 그는 먼 발치 눈길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돌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거기엔 숨어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문득, 이건 대장장이 태석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확 밀려 온다. 이건 배창호 자신의 영화만들기의 고독에 대한 얘기다. 20년동안 저자거리를 돌며 칼을 갈고 낫을 갈았던 태석처럼 배창호 역시 20년 넘게, 30년 가까이 곳곳의 영화판을 돌며 이 영화를 갈고 저 영화를 갈아 왔다. 태석이 죽마고우 득수에게 배신을 당했듯이 배창호도 가장 믿었던 영화판 누구누구한테 원망이 남아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속 태석이 한번도 대장장이 일을 그만두지 않았던 것처럼 배창호 역시 한번도 영화 '짓'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배창호의 자전적 영화이자 마지막 결기의 영화이고, 또 어쩌면 영화판 모두를 받아들이는 '용서'의 영화일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움직이는 건 그 과정에서 겪었을 한 작가의 밤샘 고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지녀야 할 덕목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집,끈기,인내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배창호 감독만큼 묵묵히,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작가가 있을까. 그의 모습을 본지 하도 오래되서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저없이 영화 <길>을 보면 그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속에서 태석을 연기하는 배창호 감독이 실제로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웬지 미안해진다. 이상하게도 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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