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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과징금 취소결정, 검찰 수사하라!

<김창룡의 미디어비평> '번복' 주도한 이남기 구속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SK그룹 측에 외압을 행사하여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하도록 해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은 다시 한번 국민을 좌절시켰다. 특히 안정남 전 국세청 청장은 해외로 도피하고 이석희 차장은 해외 도피생활 중 붙잡혀 현재 구속된 상태에서 ‘세풍사건’ 수사를 받고 있어 ‘경제검찰’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에 대한 권위와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권위와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경제 사정기관 수장들의 수난시대는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망쳐놓고 있으며 그 조직이 실행한 각종 조치들마저 불신을 갖게 한다.

이 전위원장의 구속으로 그가 조사한 언론사 내부자 부당거래 내역과 이에 따른 과징금 부과와 철회의 곡예는 다시 한번 재평가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자본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불법과 탈법행위는 물론 기업의 부당한 내부거래 등을 감시, 조사, 처벌해야 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이 특정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제3자가 수수하도록 불공정하고도 불법한 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아직 법원으로부터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공정한 경제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공정위 최고책임자가 구속된 상황에서 그가 시도했다 논란이 된 ‘언론사 과징금 부과와 철회, 인수위 조사’ 등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필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남기 위원장 재직 시절인 2002년 15개 신문사와 방송사에 대해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한 뒤 18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대대적으로 언론사에 대해 불법과 탈법조사를 한 뒤 사실상 처음으로 부과한 과징금이었다. 공정위 조사의 무풍지대에 안존해온 언론사 입장에서는 충격이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언론사도 기업인만큼 조사대상에서 예외라는 특혜가 더 이상 주어져서는 안 된다’며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과징금 부과결정은 몇 달 가지 못해 취소됐다. 이 전위원장이 앞장서서 해당 언론사에 대해 일괄적으로 과징금을 취소한다면서 당초의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언론사도 기업이라는 차원에서 부당한 내부거래를 막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던 목표는 사라지고 김대중 정권 말기에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조치를 취했다. 시민단체에서는 ‘정권말 언론 봐주기’라며 이 전위원장의 결정에 대해 반발했다.

시민단체와 언론단체의 반대에 직면한 이 전위원장의 언론사 과징금 취소 해명은 해괴했다. ‘해당언론사들이 과징금 부과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소송에 지게 되면 다른 불공정행위에 따른 과징금 부과건도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설명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공정위가 법과 원칙에 따라 조사를 하고 과징금을 부과했다면 소송에 가서도 패배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이를 판정하는 법원이 외국에서 주관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 법원이며 법원 역시 법에 의해 판결을 내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혹 훗날 법원에서 그런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결과를 미리 예측해서 스스로의 결정을 번복할 때는 다른 현실적 이유가 있는 법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할 공정위가 ‘정치적 판단’을 통해 내린 과징금 부과취소건은 결국 노무현 정부로 넘어왔다.

2003년 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인수위원회에 지시하여 공정위의 과징금 취소경위를 파악하도록 했다. ‘과징금을 부과했을 때도 이유가 있듯이 철회했을 때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노 당선자의 지시에 따라 조사에 나선 인수위 임채정 위원장은 이 전위원장과 만난 후 ‘새 정부에서 문제삼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임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노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결국 인수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취소결정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 수개월째 아무런 진척도 발표도 없다. 감사원이 감사를 했는지, 과징금 취소결정은 여전히 유효한지, 왜 그런 번복결정을 내렸는지 등에 대한 해명이 없는 것이다. 이 와중에 의혹의 핵심인물인 이 전위원장이 구속됐다.

조사대상 재벌그룹으로 하여금 거액을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기부하도록 한 이 전위원장은 ‘압력행사를 한 것이 아니다’ ‘대가성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전위원장은 SK텔레콤의 KT 지분 매입으로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해 7월12일 김창근(구속) SK구조조정본부장을 집무실로 불러 서울시내 모 사찰에 기부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SK 측은 한달 넘게 돈을 내지 않다가 이씨의 독촉을 받고서 SK텔레콤에 자금을 마련토록 한 뒤 작년 9월10일께 10억원짜리 수표 1장을 모 신도 계좌를 통해 입금했다고 한다.

권력자나 정치인이나 거액의 뇌물을 먹고는 한결같이 한다는 소리가 ‘대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검찰도 ‘떡값이다.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주장을 잘도 받아들인다. 10억원을 시주하는 기업이 인간 이남기를 흠모해서가 아니라 공정거래위원장이라는 직책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가성 운운’한다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고 법을 기만하는 일이다.

이러한 저간의 정황을 살펴볼 때 이 전위원장의 구속을 계기로 그가 주도했던 언론사 과징금 부과와 번복과정은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전위원장의 과징금 부과와 번복 이면에 어떤 유형의 뒷거래가 있었는지 감사원의 감사가 아닌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 182억원의 과징금을 무마해주는데 대가가 없을 리 없고 그런 번복에 따르는 부담을 이 전위원장이 몰랐을 리 없다. 이 전위원장의 번복결정에 동원된 내외인사들에 대한 조사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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