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 정치세력이 주도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에 대해 "거기에 오늘 여당의 비극이 있다"며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9일 보도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분당을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대선 때) 찍어준 사람들에게 승인받은 적이 없다"며 "표 찍어준 사람들은 그렇게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DJ 역할론'과 관련해 "일체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정치 불개입' 선언을 했으나, 이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분당 사태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힘에 따라 적잖은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정당, 국민 두려워하고 국민과 약속 지켜야"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노무현 정권이 정당정치를 폄훼하면서 관료엘리트 중심의 국정운영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최 교수가 작심하고 얘기한 모양"이라면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자유당 때 이래 쭉 양당정치가 제대로 돼 왔는데 선거 때 표 얻었던 약속을 다 뒤집고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데 갈라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정당사에선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또 "말하자면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안토끼 놓친 격"이라면서 "정당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면이 부족하다"고 분당을 주도한 친(親) 노무현 세력에 대해 비난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분당 사태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비극의 시작이었다"면서 "우리 정당정치가 상당히 후퇴해버렸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 내가 해놓은 것에서 한 발 더 나가야"
김 전 대통령은 또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인색한 평가를 했다.
그는 "민주당이 노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자로서 민주당의 전통과 정강정책을 충실히 지키겠다고 국민한테 약속했다"며 "햇볕정책을 계승한다 해놓고 대북송금 특검을 했는데 특검만 하더라도 현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해 가지고 수많은 희생을 냈다"고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결국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50억 원을 수뢰했다고 했는데 무죄판결을 받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며 "내가 해놓은 것에서 한 발 더 나가는 합의를 봐야 된다"고 현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는 "일단 (남북 정상이) 만나게 되면 역사적 평가를 위해서라도 뭔가 일을 만들게 된다"며 "그렇게 해놓으면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더라도 바꾸기 어렵다"고 거듭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시 한국이 냉전의 주무대 되지 않을까 우려"
김 전 대통령은 북한 핵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대치, 일본의 우익 아베 정권 출범, 중국의 동북공정 등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동북아 정세는 제2차 냉전시대를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며 "1차 냉전이 미·소 대립이었다면 2차 냉전은 미·일 대(對) 중·러인데 그 사이에 한국이 1차 냉전 때와 같이 주무대가 되는 상황으로 가는 게 아닌가, 또 한번 우리가 시련 속에 있지 않나 걱정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대처 능력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외교가 별로 안 좋은 거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 정부에 대해 "한국은 네 마리 코끼리(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다리 사이에 끼어 있으니까 운신을 잘해야 한다"면서 "미국 중국과 협력하되 할 말은 제대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