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진우 |
출연 임형국, 양은용, 오정세
제작,배급 인디스토리 |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04분 | 2006년 |
상영관 필름포럼, CGV 강변 올해는 8월의 일요일이 4번이었다. 어떤 해는 다섯 번, 또 어떤 해는 이번 해처럼 4번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치도록 무더운 한여름의 일요일. 많은 사람들은 그 지루하고 무료한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견뎌내려 했을 것이다. 의미없는 나날들. 인생의 한복판도 그처럼 뜻없이 흘러가고 있는 나날들. 영화 <8월의 일요일들>은 바로 그 속절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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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일요일들 ⓒ프레시안무비 |
<8월의 일요일들>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덧없는 일상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강제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자발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정치적 이념적 억압이 외부 세계와의 벽을 차단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면의 억압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소통이 차단된 것이 아니라 소통을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호상(임형국)은 여행길에서 자신이 몰던 승용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큰 사고를 당한다. 자신은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아내는 식물인간이 돼버렸다. 이미 사경 건너편으로 넘어가 버린 아내. 하지만 호상은 그보다, 죽어가는 아내의 노트에서 낯선 남자 이름을 발견하고 오히려 그 사실에 절망한다. 호상의 아내를 치료하는 시내라는 이름의 여의사(양은용)는 동료 의사이자 동생의 남편과 불륜을 맺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주차장에 만취가 돼 쓰러져 있는 호상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가 뜻하지 않은 정사를 벌이게 된다. 한편으로 시내는 호상 때문에 알게 된 책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8월의 일요일들'을 구하려고 애쓴다. 시내에게서 전화 주문을 받은 헌책방 주인 소국(오정세) 역시 모디아노의 책을 찾지만 이미 절판이 된 상태라 쉽게 구해지지가 않는다. 자동차 사고와 식물인간이 된 아내, 얽히고 설키는 불륜, 프랑스 유명 현대소설 때문에 이어지는 관계 등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사건과 에피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정작 <8월의 일요일들>은 이 같은 '드라마'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압박함으로써 이것이 드라마(환상)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현실)임을 드러내려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그리 요란하지 않다. TV드라마처럼 눈물 콧물 짜내는 일이 많지가 않다. 실제로 그런 일이 대두되더라도 사람들은 그걸 보통의 일상 그대로 지리멸렬하게 견뎌내려 한다. 실제 인생은 마치 한여름의 더위를 참듯 견뎌내는 것일 뿐이다. 마치 이 영화가 얘기를 풀어가는 방식처럼, 시종일관 긴 호흡과 정적의 롱테이크로 일관할 뿐인 것이다. 386으로 대표되던 이전 세대가 기성화되고 보수화된 후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지금의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297세대'는 과거와 달리 사회와 세상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고립되는 길을 택하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세상을 바꾼다느니 어쩐다느니 해서 요란뻑적지근하게 난리를 쳤건만 사람들의 삶은 자꾸만 더 어려워질 뿐이며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의 근원적인 무엇, 그러니까 무한한 고립감과 박탈감/소외/소통의 부재 같은 문제는 전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맑시스트적 방식뿐에서가 아니라 프로이드적 관점에서도 사유돼야 한다는 점, 그러니까 정치사회경제의 구조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욕망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 역시 함께 해결돼야만 된다는 점을 영화 <8월의 일요일들>은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의 일요일들>은 지나치게 관념과 사유의 세계로만 나아가는 바람에 두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그래서 허공에 붕 뜬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가 관념의 과잉이자, 관념의 강박이며, 심지어 관념의 유희처럼 느껴지는 건 그때문이다. 영화속 인물들의 외로움이 절실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그 외로움을 함께 나누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뛰어난 영화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설득시키는 것이다. 공감이라는 용어는 바로 그때 쓸 수 있는 말이다. (* 이 기사는 문화일보 '오동진의 동시상영관'에서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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