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달 21일 과격한 시위에 대해 최루액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이번달 27일에는 대규모 도심 집회를 금지토록 하고 변형된 형태의 미신고 집회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하기로 하는 내용의 지시를 일선에 하달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 도심집회 금지하고 문화제 등 변형된 집회도 강력 대응
경찰청은 이날 각 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 등에 '집회·시위 현장조치 강화지시'를 하달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번 지시에서 강조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도시 도심지역에 심각한 교통불편이 우려되는 경우 집회 자체를 금지시키는 방안을 사안별로 적극 검토키로 한 것이다. 집회 및 시위와 관한 법률에 따라 각 사안별로 집회의 허가 여부를 따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또 경찰은 최근 기자회견이나 문화제 등을 명목으로 사실상 미신고 집회를 여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하고 이같은 미신고 집회에 대해 해산 및 현장검거를 통해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불법 집회에는 검거전담부대를 전진배치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참가자들을 현장에서 검거한 뒤 전원 즉심에 회부하거나 입건하기로 했다.
"근본적인 문제 개선 없이 통제만 하면 해결되나?"
이번 경찰의 발표에 대해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집회와 시위 자체는 허가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라며 "이를 강제로 막겠다는 경찰의 발상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반발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도심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체증은 경찰이 지혜로운 집회 관리를 통해 원활한 교통의 흐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라며 "교통체증을 집회와 시위 자체를 봉쇄함으로써 해결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도 "미국은 백악관 앞에서도 합법적인 집회가 가능한 데 반해 우리는 합법적으로 집회가 가능한 공간이 너무 적다"며 현행 집시법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변형된 집회·시위가 생겨나는 것인데 이 역시 봉쇄를 통해 통제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해법이라는 얘기다.
또 불법성 여부를 경찰이 스스로 판단하는 데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문화제인지 불법집회인지를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경찰 편의주의적인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최근 평화적인 신(新) 집회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촛불집회나 문화제 등은 경찰이 오히려 권장해야 할 문화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정부 당국과 경찰의 철학은 무엇인가?"
이들은 최루액 사용가능·도심집회 금지 등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최근 움직임이 "대단히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창익 국장은 "정상적인 의사 표현의 수단을 봉쇄하는 것은 시민들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라며 오히려 더 극단적인 집회 문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래군 상임활동가도 "경찰의 최근 지침이 관철되면 사실상 합법적인 집회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경찰의 이런 방침은 오히려 심각한 대결국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경찰의 태도는 1980년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며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정부 당국과 경찰의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경찰의 발표를 접한 회사원 최 모 씨(30)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 물결의 분위기로 당선되고,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시민들이 참가한 대규모 도심 집회로 탄핵의 위기에서 되살아난 정부가 민주주의의 원리를 무시하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고 정부의 방침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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