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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판사가 존경받는 시절이 오게 될까"

[한 중견 판사의 자기고백] 회한, 성찰, 그리고 희망

이용훈 대법원장의 '말 파문'으로 검찰과 변호사 단체가 발끈했지만, 이 대법원장 발언의 화살은 사실 법원 내부를 정면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형사재판에서의 공판중심주의, 구술주의는 검찰과 변호사에게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동안 '서류재판'에 익숙하던 판사들로서는 이같은 '변화'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 대법원장은 법관들에게 집요하게 '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자신의 '15년 판사 인생'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서울 지역의 한 중견 판사는 27일 오전 기자를 만나 회한과 자기성찰의 심정을 털어놨다. 항상 이름 석자를 걸고 판결문을 쓰던 그였지만, 이런 고백은 이름 석자를 걸기가 아직 힘겹다며 실명 공개만은 사양했다.

그는 "솔직히 재판에서 피고인이 중심이 아니라, 각종 서류와 검사·변호사가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법원장의 공판중심주의, 구술주의에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내며 "법원의 자기 개혁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판사라는 직업이 국민들로부터 명예로울 수 있는 직업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회한을 바탕에 깔면서도 법관으로서의 명예를 새롭게 찾아가고 싶다는 진솔한 심정이 녹아 있는 그의 구술을 기자가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

얼마 전에 막내가 다니는 중학교에 일일교사로 간 적이 있다. 그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교문을 열고 들어가 내 소개를 하고 교단 위에 서서 학생들을 죽 훑어보는데 하나 같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얼어붙어서 1~2분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판사 생활 15년이 넘었는데. 법원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동안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피고인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재판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몸서리가 쳐졌다.

처음 지방으로 발령 받아 단독 판사를 했을 때, 너무나 떨렸었다. 그 때 한 선배가 도움이 될 거라면서 위스키 한 병을 선물해줬다. 선고 읽기 전에 두 잔 씩 들이키고 들어갔다. 그 때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웠고, 방청석에서 울고불고 난리 치는 사람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지금이야 판사석에 앉아 있으면 방청객 표정이 훤히 보인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솔직히 직업으로 치자면 이거 괜찮은 직업은 아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70대 노인이 방화 혐의로 구속돼 법정에 섰다. 깡마른 체구의 노인은 머리도 백발인데다가 눈이 깊숙히 패인 것이 한 눈에 봐도 가난에 평생을 시달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검찰이 낸 공소장과 진술조서를 보니, 노인은 나이 사십이 가깝도록 장가 가지 않고 자신과 단 둘이 사는 아들을 상대로 '용돈을 안 준다'는 이유로 싸운 뒤 분을 참지 못해 집에 있던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불이 옆집까지 번지고 옆 집에 살던 노파가 3도 화상을 입은 과실치상까지 더해 있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한 번은 "담배를 태우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자기는 한 평생 담배를 태우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불을 지를 때는 무엇으로 지르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 노인네가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검찰이 낸 진술조서를 다시 뒤져봤는데 불을 지른 도구가 명시 안 돼 있었다. 이에 검사에게 "방화 도구를 특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재판을 마쳤다.

다음 기일에 검사가 추가 증거를 제출했는데, "아들의 라이터를 빼앗아 불을 질렀다"는 진술 내용을 추가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70이 넘은 노인이 그것도 만취한 상태에서 불을 지르겠다고 집안에 석유를 뿌린 상태에서 아들에게서 라이터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됐다. 게다가 피고인인 노인은 "당시 술에 취해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난다"면서 구체적 진술을 하지 못했었다.

그 노인은 재판 내내 줄곧 "제가 나쁜 놈입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홧김에 그만…. 저를 처벌해주십쇼"라고 얘기했다. 결국 그 노인에게 어쩔수 없이 실형을 선고했지만, 그 노인과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아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얼핏 봤는데 실형을 선고하던 날 아들은 말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여러번 생각해봤지만, 불을 지른 건 아들이었을 것 같았다. 아들이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버지랑 싸우다 홧김에 불을 질렀는데, 아버지는 '나는 살 만큼 살았다. 앞길이 창창한 아들을 전과자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으로 허위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후회를 많이 했다. 아들이 그날 술을 마셨는지, 평소 성격이 포악스럽지 않았는지, 아버지와 불화는 어느 정도였는지 주변 사람들을 증인으로 불러 좀 더 치밀하게 조사했다면 사건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겠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런데 재판 시작 전에 수사기록을 보고 '여느 방화 사건과 똑같구나'라는 생각에 재판을 형식적으로 진행했다는 반성을 했다. 사실 이 정도는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단계에서도 걸러낼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이런 사정을 항소심에 알려줄까도 생각했지만 그 노인은 아예 항소를 하지 않았다.

어제 이용훈 대법원장님이 민사 재판 때 화해·조정 권고를 하면서 원고 쪽에 가서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원고 쪽이 진다"는 분위기를 흘리고, 피고 쪽에 가서도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피고 쪽이 질 것 같다"고 양 쪽을 협박해 조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관행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섬뜩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판사는 필연적으로 어느 누군가에게는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다. 어디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수천만, 수억 원씩 걸린 재판에서 한 쪽 손을 들어주는 일이 쉽겠는가. 대부분의 사건은 유무죄, 귀책사유가 명백하게 가려지지만 그렇지 않은 10% 정도의 사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현실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건들을 사람의 일이 아니라 천장까지 쌓여 있는 기록들 중의 하나로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해서 법원, 검찰 직원들 서류더미를 카트에 끌고 다니고, 변호사들은 종이 더미를 보자기에 싸갖고 다니는데 지금 세상 어디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참 웃기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기록 속에 모든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문제도 쉽게 흘릴 남의 일이 아니다. 어제 대법원장님도 지적했지만 내가 판사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송사에 휘말리며 가장 먼저 나한테 변호사 소개시켜 달라고 한다. 그럼 난 누굴 소개시켜주겠나. 법관 하다가 개업한 선배들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나중에 개업해야지'라는 생각을 무슨 보험처럼 하고 있던 것 아닌가. 그래서 변호사들을 결국엔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이번 대법원장 말씀을 통해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사실 공판중심주의나 구술주의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자백한 사건이나 귀책사유가 명백한 사건 외에 피고와 원고 사이에 다툼이 치열한 사건만 치면 그렇게 많지 않다. 적어도 이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재판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요즘은 법정에 들어가면 법정 안을 한 번 죽 훑어보고 재판을 시작한다. 방청석에 앉아 피고인 뒤통수를 바라보며 노심초사 앉아 있는 사람들의 애절한 눈빛을 보면 결코 재판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더 판사를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법관들이 제 허물을 겸허히 돌아봤으면 좋겠다.

사실 이런 생각들을 언론에 기고도 하고 내부통신망에 올리고 싶었지만, 솔직히 용기가 없어서 못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지만, 판사도 인간인지라 완전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분명히 나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을 테고, 혹은 형량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들이 나를 알아볼까도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작년에 큰 녀석이 대학에 갈 때 법대를 가겠다고 하길래 의대를 가라고 했다. 정말 진지하게 얘기했었다. 의사는 무조건 사람을 살리기만 하면 되는 직업이지만, 판사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직업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지만 직업 법관이라면 사형선고를 내리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판사들은 오래 산다고 한다.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데 대법원장께서 어제 '명예'를 강조하더라. 자기는 변호사 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봤지만 결국엔 명예가 더 좋더라면서. 판사는 그런 생각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그 명예를 주변 동료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찾지 말고 법원을 찾는 국민들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겠나. 내가 판사 하는 동안 판사가 국민들 사이에서 명예롭고 존경 받는 시절이 과연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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