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Everything Is Illuminated>와 새로 나온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하는 사람은 적어도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꽤나 영화를 본다는 축에 속하는 소위 '영화광'이거나 아니면 다가오는 9.11 5주기에 대해 특별한 감성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영화광이라고 하더라도 두 작품의 상관관계를 바로 떠올리기는 쉽지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배우 출신인 리브 슈라이버의 첫 감독데뷔작이고 주연은 일라이저 우드가 맡은 영화다. 일라이저 우드는 우리에게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 그런데 이 일라이저 우드의 극중 이름이 조너던 사프란 포어이고 그 이름은 바로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이름이다. 참으로 별 걸 다 가지고 신기해 한다며, 툴툴거릴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을 보고 나면 그런 소리가 쑥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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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Everything Is Illuminated ⓒ프레시안무비 |
77년생, 그러니까 갓 서른이 될까말까한 조너던 사프란 포어의 첫 소설과 두번째 소설에 해당하는 이들 작품은 각각 인간의 역사 속에 깊은 상흔을 남긴 두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 전자는 2차대전 때 우크라이나의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졌던 나치 학살에 대한 것, 후자는 9.11때의 '제목없는' 학살에 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가 영화로 만들어졌듯이 「엄청나게..」도 곧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니 좀 앞당겨서 영화지면에서 다룬다 한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는가,가 '프레시안무비' 편집부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곧 9.11이다. 9.11은 단순히 미국인들의 트라우마로만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없는가. 있다면 그 상처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엄청나게…」의 한자 한자, 한줄 한줄의 얘기가 우리들의 가슴을 적시는 이유는 그때문이다. 9.11은 결코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 한 9살 꼬마의 뉴욕 방랑기 그러나… 「엄청나게..」는 한마디로 9.11 테러(9.11을 얘기할 때 '테러'라는 표현을 써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역시 꽤나 큰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지만 국내 저널에서 줄곧 사용해 온 표현인만큼 그대로 사용한다 – 편집자) 때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한 9살난 꼬마의 뉴욕 방랑기다. 이 꼬마, 그러니까 오스카 셸은 9.11이 있은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 토마스 셸의 유품 중에서 용처를 알 수 없는 키를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를 '발명가이자 보석 디자이너이고 보석세공사이자 아마추어 역학자, 친프랑스주의자,절대 채식주의자, 종이접기 작가, 평화주의자,타악기 연주자, 아마추어 천문학자, 컴퓨터 컨설턴트, 아마추어 고고학자, 수집가'로 생각하는데다 스티븐 호킹에게 비서로 써달라며 주저없이 편지를 보낼 정도로 당찬 성격의 영재인 오스카는 추론에 추론을 거듭한 끝에 이 키가 '블랙' 성(姓)을 가진 누군가의 것인데 아버지가 돌려주기 위해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낸다. 그리고 이때부터 오스카의 '미스터 블랙' 혹은 '미스 블랙'을 찾기 위한 뉴욕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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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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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9.11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어린 꼬마답지 않게 뉴요커들을 만나고 상대하고 수다를 떠는 오스카의 재기스러움과 발랄함, 위트와 유머때문이다. 하지만 그 재미 이상으로 이 책이 감동스러운 것은 오스카가 만나는 뉴욕의 수많은 사람들이 – 그 사람들이 블랙 성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 9.11의 슬픔을 이겨 내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때문이다. 치유의 행위는 결코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선행되야 한다. 오스카가 만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을 깨달은 사람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테러를 테러나 전쟁, 침략으로 응수하면 안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오스카가 겪는 가장 가까운 사람, 곧 소년의 엄마는 이런 사람이다.
『… 아빠가 돌아가시고 몇 달 후, 엄마와 나는 뉴저지의 창고에 갔다. 아빠가 더는 쓰지 않지만 언젠가, 아마도 은퇴할 때쯤 다시 쓸지 모를 물건들을 보관해 둔 곳이었다. 차를 빌려서 갔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느라고 자꾸 차를 세웠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 창고는 정리도 잘 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엄청나게 어두워서, 함참 후에야 아빠의 작은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빠의 면도칼을 놓고 다퉜다. 엄마는 면도칼을 '버릴 것' 무더기에 넣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남겨둘 것'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말했다. "이걸 놔둬서 뭐에 쓰게?" "뭣에 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왜 아빠가 삼 달러짜리 면도칼을 굳이 챙겨놨는지 모르겠구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니까요." "전부 다 남겨둘 수는 없어."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 제가 엄마 물건을 몽땅 내다 버리고 엄마를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내가 한 말을 집어 삼키고 싶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 오스카가 대변하는 우리 모두의 죄의식 결국엔 오스카가 찾아 낸 열쇠의 주인 '미스터 블랙'과의 대화 역시 가슴을 친다. 오스카는 이 미스터 블랙에게 마침내 자신의 가슴 속에 담겨진 엄청난 비밀을 고백하게 된다. 9.11 사건이 터진 날, 학교의 조치로 그 누구보다도 일찍 귀가한 오스카는 빌딩이 무너지기 직전에 건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곤 아버지의 마지막 육성이 남겨진 녹음테입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추고 만다. 오스카는 '미스터 블랙'에게 아빠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것, 무엇보다 그 전화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오스카가 갖고 있는 죄의식은 단순히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오스카는 아빠의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며 곧 아빠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오스카가 끝끝내 '미스터 블랙'을 찾아 나서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용서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우리 모두 어쩌면 빌딩이 무너지는 그 순간을 본 후 오스카와 같은 죄책감을 갖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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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의 상흔, 그리고 그 치유에 대한 조너던 사프란 포어의 탁월한 방법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진다. 바로 '이해'와 '용서'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엄청나게…」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서 9.11에 대해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눈으로 바라 보려는 욕구가 생겨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좌파든 우파든, 미국민이든 아랍권 국가의 국민이든, 9.11을 직접 겪었든 그렇지 않았든, 이 책의 내용을 포용해야 하는 이유는 그때문이다. 사프란 포어의 작가적 천재성은 어린 오스카가 겪은 일을, 오스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에서 겪은 참상과 오버 랩 시키는 점에서 찾아진다. 폭력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환의 역사를 이제 우리가 멈추게 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소설 중간 중간 많은 사진과 타이포그래프를 활용한 독특한 구성도 볼 거리다. 소설이 영화의 영역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는 것, 여전히 문학적 상상력이 영화적 상상력을 뛰어 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9.11을 앞두고 세계의 평화적 공존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 읽기를 권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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