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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길로 새지 않은 게 참 귀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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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길로 새지 않은 게 참 귀한 일이었다"

신영복 교수 정년퇴임식 '여럿이 함께'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던 시절에 출소하는 사람들에게 불러줬다던 동요 '냇물아 흘러 흘러'다. 신영복 교수가 17년 간 교편을 잡아 온 성공회대의 교수직에서 퇴임해 같은 대학 석좌교수로서, 그리고 우리 시대의 '든든한 지성'으로서 '또 다른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는 퇴임식장에서 이 노래가 다시 불려졌다.

25일 밤 성공회대 일만광장에서 열린 신 교수의 퇴임식은 콘서트 형식으로 치러져, 말 그대로 '잔치'와 같았다.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을 비롯해 아이나 애인의 손을 잡고 온 1500여 명이 일만광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이날 콘서트 퇴임식의 이름이자 신 교수가 출소 후 자주 써 온 글귀 '여럿이 함께'는 신 교수의 삶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였다.
▲ 신영복 교수의 콘서트 정년퇴임식 '여럿이 함께'에 모인 사람들. 왼쪽 맨 앞에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가 앉아 있다. ⓒ 프레시안

이날 행사장에는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에서부터 정치인, 재벌기업 총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이들이 참석해 신 교수가 받고 있는 사회적 존경을 실감하게 했다.

신영복 "옆 길로 새지 않았다는 것이 참 귀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 신영복 교수가 <논어>의 한 구절을 읊는 것으로 참석해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 프레시안

신 교수는 "본의 아니게 규모가 커졌다"며 쑥쓰러워하면서도 "오늘 참석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며 <논어>의 한 구절을 읊었다.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라는 뜻의 '유붕이 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而 自遠方來 不亦樂乎)'였다.

신 교수는 "성공회대학교는 서울에서 참 멀다. 지리적으로 멀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담론의 지형에서도 변두리에 있다"며 "그래서 우리 학교를 찾아주는 이들에게 항상 <논어>의 이 구절을 들려준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담론의 지형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성공회대. 하지만 '통일혁명당' 사건이라는 당시 신문 지면을 커다랗게 장식했던 그 사건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던 그가 출소 후 학생들을 만나고 또 자신의 철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 교수는 "정년퇴임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어색했다"며 "격변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옆길로 새지 않고 내 갈길을 갔다는 것이 참 귀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정년퇴임의 소감을 털어놨다. 이 말은 감옥에서의 20년, 그리고 출소 후 교수로서의 20년을 마치고 또 다른 새로운 20년의 삶을 시작하는 신 교수의 각오로 들리기도 했다.

조정래 "그와 더불어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축복"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른다. 이날 가수에서부터 탤런트, 정치인, 재벌 총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찾아 온 것도 신 교수가 '옆길로 새지 않고' 꿋꿋이 자기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자 이날 첫 무대를 장식한 윤도현 씨는 "누가 왜 음악과 관련된 학교로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성공회대가 좋으니까'라고 대답한다"며 신 교수에 대한 신뢰감을 표현했다.
▲ 가수 윤도현 씨가 축하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프레시안

소설가 조정래 씨 역시 "그와 더불어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했고, 탤런트 권해효 씨는 "같이 축구도 안 하고 저한테 그림 한 장, 글씨 한 장 주신 적도 없는데 선생님이 왜 저를 부르셨을까 하고 생각했다"며 대학시절 연기 공부를 하면서 외웠다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한 구절을 암송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 탤런트 권해효 씨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한 구절을 암송하고 있다. ⓒ 프레시안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선배님은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천상 청년"이라며 "강자의 폭력이 적나라하게 관철되는 경멸과 증오의 현장인 감옥에서 20년을 보내고도 더 열정적인 청년이 되어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지난 40년 동안 선생을 버티게 한 영혼의 날개로 더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자유의 세계로 날아오르는 선배님의 모습을 기다린다"고 신 교수의 새 삶을 축하했다.

현정은 "대북사업 좀 도와주세요"

신 교수의 대학시절 입주과외 제자였던 심실 유니온커뮤니케이션 회장은 "오빠는 사랑은 경작하는 것이지 절대로 획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며 "오빠의 그 아름다운 휴머니스트로서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로 외모와 달리 부르주아적으로 살 수가 없었다. 오빠를 따라 민주화 운동을 하게 됐고 지금도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을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예정에 없던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이 무대 위에 올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심실 회장과 어린 시절의 동네친구였다는 현정은 회장은 "신 교수를 소개 받기 전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신 교수의 글씨를 갖게 됐다"며 "대북 사업이 많이 어렵다. 퇴직하고 시간도 많으실텐데 대북사업을 좀 도와주시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과 신 교수의 스승인 이현재 전 국무총리,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가 저마다 자신에게 신영복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했고 장사익, 강산에, 한영애, 나팔꽃 등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 가수 장사익 씨는 '동백아가씨'를 부르며 신영복 교수의 정년퇴임을 축하했다. ⓒ 프레시안

행사 전에 상영된 성공회대 재학생들이 만들었다는 다큐멘터리의 한 구절은 정년퇴임하는 신 교수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할일이 많음을 느끼게 했다.

"다시는 못 뵐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희망을 배운 사람들이 당신께 감사하는 자리입니다.
약속과 다짐의 시간입니다.
이제 우리들 모두가 더불어 숲이 되겠다는,
밤 깊은 곳의 별이 되겠다는 그런 자리입니다.
그렇게 이 자리는 또 한 번 당신에게 배우는 자리입니다."


그가 출소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러줬다던 '냇물아 흘러 흘러'가 성공회대 교수 밴드 '더 숲 트리오'와 신 교수의 잔잔한 목소리 속에 다시 불리워지는 가운데, 정년퇴임과 함께 시작되는 신 교수의 새로운 삶이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는 성공회대 일만광장에서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 신영복 교수가 성공회대 교수 밴드 '더 숲 트리오'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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