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과 그들의 법적 권리인 파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시각이 잘못된 교과서로부터 비롯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노동교육원은 24일 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초등학교 교과서 12종, 중학교 교과서 30종, 고등학교 교과서 30종 등 모두 72종의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현행 초·중·고 교과서의 일부 내용이 학생들의 직업 및 진로 선택에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노동자 파업에 대한 부정적 편견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노동자=폭력집단…노조에 대해 강경정책을 펼치면 경제발전 이룬다"?
송태수 한국노동연구원 교수가 진행한 '한국 노동교육 내실화를 위한 정책대안 연구'에 따르면 현행 교과서 곳곳에 노동자들의 법적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혼란'이라고 표현하고 노동자들을 잠재적 폭도들로 규정하는 등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할 위험성이 있는 표현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교학사'에서 펴낸 중학교 2학년 사회교과서에는 사회법이 생겨난 배경을 설명하는 삽화에 "노동자와 사업주 간의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겠어"라고 고민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대한교과서'에서 만든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에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체행동이 혼란을 초래한다는 내용의 부정적인 인식을 내포한 서술이 나온다. 노동자들의 집회를 보여주는 사진에 "산업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혼란을 계속 겪어 왔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것이다.
송태수 교수는 "이같은 서술은 학생들에게 노동자들은 곧 잠재적인 폭력집단이며 늘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는 존재라는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노동조합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펼치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취지의 서술도 있다.
'디딤돌'에서 펴낸 고등학교 1학년 사회교과서는 '정부규제가 적은 나라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주제를 설명하면서 1979년 이후 집권한 영국 보수당 정부가 "노조에 대한 강경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민간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 완화, 재정지출 삭감, 조직 개편 등을 추진해" "영국 경제가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이 국가경제 발전에 장애물이 된다는 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아빠는 노동자야? 근로자야?"
아이들이 "아빠는 노동자야? 근로자야?"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같은 질문이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교과서가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표현이 혼용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현행 교과서는 부정적 이미지의 서술이나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경우에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근로자'는 노동권 등 법적 권리를 설명할 때나 사무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설명할 때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송태수 교수는 "심지어 한 교과서의 같은 페이지 안에서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단어가 부정적, 긍정적 이미지로 뒤섞여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교과서가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머릿속에 육체노동자, 사무근로자의 구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이는 노동 자체에 대한 사회적 기피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인 개인의 노동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라는 얘기다.
"노사갈등은 시장경제에서 항상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것"
송 교수는 "노사갈등은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노동력을 사고 파는 과정, 즉 근로계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의 서술은 노사갈등은 가능하면 없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 한몫 하고 있다고 송 교수는 지적했다.
노동부는 이같은 연구결과를 교육부에 통보해 현행 교과서 내용을 수정·보완하고 2009년부터 실시되는 제8차 교육과정 편성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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