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개봉하는 이해영, 이해준 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 전부터 화제다. 이 영화는 여자가 되길 꿈꾸는 소년 씨름 선수의 이야기. 영화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독특한 설정 때문이다. 이 영화는 '씨름' 이야기인가 아니면 성(性)적 소수자의 이야기인가. 개봉 전 시사회 때부터 유쾌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세가지 키워드를 통해 이 영화를 미리 만나본다.
. 키워드1 여자 - 뒤집기 한판의 재미 고교 1학년 오동구(류덕환)에겐 오랜 꿈이 있다. 연예인, 의사, 교사 등의 장래 희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느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질'의 고민이다. 동구는 '여자'가 되길 꿈꾼다. 그에게 여자가 되겠다는 꿈은 선택 사항이 아닌,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다. 성전환 수술을 위해 꾸준히 돈을 모으고 있는 동구. 어느 날 씨름대회에서 우승하면 상금 5백만 원을 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모래판 위에서 뒤집기 한판이면 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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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프레시안무비 |
<천하장사 마돈나>는 '뒤집기'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구의 목표가 모래판 위 뒤집기 한판승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발상부터 '뒤집기'의 연속이다. 여자가 되길 원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에 대해 우린 '아름답다'는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하리수, 류나인 등 트렌스젠더 연예인은 물론, 최근 개봉한 영화 <다세포소녀>에 나오는 '두눈박이' 캐릭터까지 여자가 되길 꿈꾸는 남자는 대부분 아름답다. 하지만 오동구는 어딜 봐도 여자 같지가 않다. 퉁퉁한 뱃살과 두꺼운 장딴지, 무거운 짐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어깨에서 '장사'를 떠올리긴 쉽지만 '마돈나'를 생각해내긴 쉽지 않다. 서로 완벽하게 다른 두 이미지를 맞붙여 새로운 감각을 끌어내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기본 발상은 '씨름'이라는 스포츠와 만나며 정점에 오른다. 여자가 되기 위해 동구는 한국의 대표적인 남성 스포츠인 씨름의 세계로 들어간다. 웃통을 벗는 것조차 부끄러운 그에게 낯선 이와 살을 부비며 힘과 기술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스포츠는 버겁다. 그러나 결국 그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야 만다. 남성성의 최고를 밟아야지만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구성은 '전복'의 쾌감을 극단으로 끌고 간다.
. 키워드2 씨름 - 씨름판 밖 현실을 얘기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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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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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전복의 쾌감을 가장 짜릿하게 표현한 장면은 씨름판 위가 아니다. 한때 잘나가는 권투선수였던 동구의 아빠(김윤석)는 회사에서 해고돼 매일을 술에 절어 지낸다. 그런 아빠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삶의 철학은 "가드(방어막) 올리고, 상대를 주시하고." 하지만 매일 그렇게 세상을 쏘아보고 살아가는 그는 정작 가족의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아이들은 아빠를 믿지 못하고 아내는 집을 나갔다. 오랜 휴식 끝에 회사에 복직돼 일터로 떠나려는 그 앞에 동구가 나타난다. 치마를 차려입은 모습으로. 세상을 약육강식의 판으로 보고, 그 공격 앞에 주먹을 세우고 방어하기 급급한 그에게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성적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 아들만큼 당혹스런 존재는 없다. 어찌할 바 몰라 허둥거리던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팔을 들어 올려 방어와 공격 자세를 취하고, 가벼운 잽으로 아들의 얼굴을 뭉갠다. 하지만 씨름으로 몸을 단련한 동구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동구는 아빠를 들어 올려 저 멀리, 공터 한쪽으로 던져버린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쾌감을 전하는 이 장면은 얼핏 오랜 갈등 관계에 있던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구도로 읽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자학과 냉소를 오가며 자신을 괴롭히고 세상의 관계를 공격과 방어로만 이해하는 중년의 남자와 세상 앞에 자신의 취향을 당당히 드러내고 주장하는 소년의 대결이기도 하다. 가드 올리고 상대를 주시하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더욱 소중함을 <천하장사 마돈나>는 에둘러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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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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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은 사회 소수자들이다. 주인공 동구는 성적 소수자이고, 그의 아버지는 막노동 일꾼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자에 해당한다. 집을 나간 엄마는 행복을 느끼지만 그녀의 생활이 무지개 빛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소수자의 삶을 그려낸다고 해서 <천하장사 마돈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코미디와 판타지를 적절히 섞어 이들의 삶을 흥겹고 빛나게 만든다. <천하장사 마돈나>가 코미디와 판타지를 이용하는 방법 역시 매끄럽다. 드라마 전편에 고루 퍼져 있는 코믹 요소는 코미디 특유의 과장됨을 덜어내고 드라마의 전체 줄기와 맞물려 흘러 억지웃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 사이사이 들어 있는 판타지 신들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신선한 이미지를 제공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 키워드3 신인 - 기성의 영화판을 뒤집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천하장사 마돈나>의 1등 매력은 배우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 오동구 역의 류덕환은 물론이고 조연배우 한 명, 한 명에 이르기까지 <천하장사 마돈나>의 배우들은 눈부신 연기력을 선보인다. 남성적 매력과 여성적 매력을 모두 갖춰야 하는 오동구 역에 류덕환이 캐스팅된 건 두 감독들이 <웰컴 투 동막골>을 본 순간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소년병을 연기한 류덕환의 곱상한 얼굴과 여린 목소리가 영락없는 오동구였던 것. 여성적 매력을 타고 났지만 오동구가 되기 위해 류덕환은 천하장사의 면모도 갖춰야 했다. 그는 결국 삼시 세 끼 삼겹살만 먹어대며 몸무게를 27kg까지 불렸다. 이러한 피나는 노력도 가상하지만 오동구로 스크린 위에 서 있는 류덕환은 반짝반짝 빛난다. 남성미와 여성미를 모두 갖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는 류덕환의 미묘한 감성연기와 만나 제 빛깔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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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프레시안무비 |
오동구의 씨름 동료, 덩치 트리오를 연기한 문세윤, 김용훈, 윤원석의 코믹 연기도 놀랍다. '덩치'로 분류될 뿐 이름도 없던 캐릭터에 이들은 말 그대로 '온몸을 던져' 몰입한다. 세 명 덩치들이 각각 갖고 있는 독특한 성격들은 각기 다른 느낌의 코미디를 만들어내 관객을 배꼽 잡고 웃게 만든다. 동구를 씨름세계로 인도하는 씨름감독을 연기한 백윤식의 연기는 단연 백미. 팔 걷어붙이고 씨름을 가르치기보다 먼 산 바라보며 조언만 툭툭 내뱉는 무심한 감독을 연기한 백윤식은 굳이 '대놓고' 연기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캐릭터와 드라마에 힘을 싣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밖에도 오동구의 짝사랑 일어 선생을 깜짝 연기한 일본배우 초난강의 유머가 즐겁고 오동구의 오랜 숙적, 아버지를 연기한 연극배우 출신 배우 김윤석의 안정된 연기가 드라마를 더욱 탄탄하게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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