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팬들의 기대를 받으며 요미우리에 입단했던 선수는 하라 다쓰노리 현 요미우리 감독이다.
이미 고시엔 고교야구대회 때부터 스타급 선수였던 하라는 1981년 요미우리에 입단한 뒤부터 '젊은 리더(若大將)'로 불렸다. 일본의 TV들은 미남형의 용모에다 호쾌한 타격실력을 갖춘 하라의 요미우리 입단이 결정된 뒤 그의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그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868개의 홈런을 때려낸 '세계의 홈런왕' 오 사다하루(王貞治),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 한 방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던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등 요미우리의 전설적 스타들에 필적하는 성적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라는 신인왕에 이어 1983년에는 최우수 선수(MVP)와 타점왕에 올랐지만 너무나 큰 팬들의 기대 때문에 자주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조금만 슬럼프에 빠져도 팬들은 술렁였고, 일부 코칭스태프들은 그에 대한 지나친 관심 탓인지 하라에게 너무 많은 간섭을 했다. 하라는 일본 프로야구 통산 382개의 홈런을 쳐낸 강타자였지만 '제2의 나가시마'가 돼 주기를 바라던 팬들의 욕구에 충분히 부응하지는 못했다. 나가시마와 같은 존재가 되기에는 하라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라의 실력이 모자랐다기 보다는 나가시마라는 벽이 너무 높았던 셈.
하라는 1989년 일본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깊은 홈런 한 방을 쳐냈다. 하라는 긴테쓰와의 일본시리즈 5차전에서 수모를 당할 뻔 했다. 긴테쓰의 마무리 투수 요시이 마사토는 요미우리 최고 타자인 워렌 크로마티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며 만루작전을 썼다. 일본 시리즈에서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했던 하라와 승부를 하기 위해서 였다. 하라는 극적인 만루 홈런으로 시리즈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일본 시리즈에서 1승 뒤 내리 3연패를 당했던 요미우리는 이 홈런을 발판으로 역전 우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하라의 이 홈런을 두고 일본 야구계는 "나가시마의 전설을 다시 보는 것 같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하라 감독은 올 시즌 이승엽이 부진할 때도 그를 믿고 4번타자로 계속 기용했다. 코칭 스태프의 시시콜콜한 조언보다 스스로 슬럼프를 벗어나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배어 있는 결정이었다. 선수 시절 요미우리의 4번타자로 뛰며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하라 감독의 배려였던 셈이다.
하라 감독은 지난 2002년에도 요미우리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첫 해 하라 감독은 요미우리를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홈런, 타점 부문 1위를 기록했던 마쓰이 히데키가 하라 감독의 총애 속에서 요미우리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쓰이는 이듬해 메이저리그로 떠났고, 요미우리의 전력은 떨어졌다. 하라 감독도 2003년을 끝으로 요미우리를 떠냐야 했다.
하라 감독이 25년 전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을 때 지상과제가 '제2의 나가시마'가 되는 것이었다면 올 시즌 이승엽의 숙제는 마쓰이 만한 요미우리의 4번타자가 돼야 한다는 것. 하라 감독도 이승엽이 마쓰이 히데키를 넘어서는 대활약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승엽은 이 무거운 숙제를 지금까지 잘 풀어내고 있다. 요미우리 팬들은 이제는 이승엽이 없는 요미우리를 생각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 올 시즌 하라 감독이 침체에 빠져 있는 요미우리의 새 리더로 이승엽을 지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5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과제를 갖고 요미우리에 입단했던 하라와 이승엽은 올 시즌이 끝난 뒤 명암이 엇갈릴 가능성도 있다.
이승엽은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시즌 50홈런에도 도전할 수 있는 상황. 메이저리그와 요미우리 잔류를 놓고 유리한 고지에서 자신의 선택을 밀어부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라 감독은 그렇지 않다. 센트럴리그 선두 주니치와 16게임차로 뒤진 채 리그 5위에 머물러 있는 요미우리는 이미 올 시즌을 포기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비록 요미우리의 와타나베 쓰네오 구단주가 하라 감독에게 계속적인 믿음을 보낸다고 해도 다음 시즌에 올해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큰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4번 타자' 이승엽이 메이저리그행을 택할 경우 그 중압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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