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 협상을 지지하지 않는 자들은 '쇄국정책'을 옹호하는 자들"이라는 정부의 강변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에 대한 찬반의 주장이 마치 '개방'이냐 '쇄국'이냐 하는 경제운용의 기본방향 또는 이념의 충돌인 것처럼 몰고 간다.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4일 한국무역협회 주최로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최고경영자 조찬회에 강연자로 참석해 한 다음과 같은 발언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한미 FTA를 비판하기는 쉽지만 FTA를 안 한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 무조건 반대하려면 북한, 리비아, 쿠바, 이란 등 폐쇄를 택한 국가들이 성공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이와 비슷한 논조의 정부측 발언은 <국정브리핑>에도 여러 번 실렸다. 한미 FTA가 체결되지 않으면 한국은 북한, 리비아, 쿠바, 이란처럼 국제적으로 고립된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에 약간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경제체제와 북한, 리비아, 쿠바, 이란의 경제체제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미 FTA가 있건 없건 대한민국은 이미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대외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IMF 사태 이후로 외국인투자가 늘어나서 국내 상장주식의 40% 이상을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나라다.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고도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개방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라가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갑자기 북한, 리비아, 쿠바, 이란 등과 같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나라가 될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산업국가는 대한민국뿐이 아니다. 일본이나 서유럽의 주요 산업국가들도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이고 당분간은 이를 추진할 계획도 없다. 김현종 본부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일본과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고 있으니 폐쇄경제를 운용하는 나라들이며 북한, 리비아, 쿠바, 이란과 동급인 나라들이 된다. 이처럼 약간만 생각해보면 정부의 '개방' 대 '쇄국' 대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가 금방 드러난다.
유독 대한민국만이 지금 당장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고립된 국가군에 편입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국민들 모르게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그런 방향의 협박을 받았는가? 그게 아니고 단지 김현종 본부장이나 한미 FTA 추진팀의 경제지식에 바탕을 두고 정부가 '개방' 대 '쇄국'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경제지식에 근거한 어거지 주장이다.
혹시 이처럼 터무니없는 논리와 판단이 한미 FTA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소신과 신념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14일 아침 삼성동 컨티넨탈 호텔에서 김현종 본부장과 아침을 먹은 기업 최고경영자들도 터무니없는 그의 말을 그대로 다 믿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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