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한국시간) 이탈리아의 사상 네 번째 우승으로 2006 독일 월드컵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은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원정경기의 불리함 속에서 1승1무1패(승점 4점)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한국 축구의 전매특허인 '측면 공격'이 살아나지 않았고, 속공도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저 '타겟맨' 조재진을 겨냥한 롱 패스만이 난무했을 뿐이다. 수비에서도 매 경기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다니는 경기를 해야 했다.
기록을 통해 보면 이같은 한국 축구의 무기력증을 잘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격과 수비에 걸쳐 모두 적극성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한국은 오프사이드를 단지 6개(경기당 평균 2개)만 기록했다. 32개 국 가운데 전체 26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매우 적은 숫자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각각 34개(경기당 평균 4.85개), 29개(경기당 평균 4.14개)의 오프사이드를 기록했다.
오프사이드는 언뜻보면 공격수에게 좋지 않은 기록이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문전 쇄도가 없었다는 뜻이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는 측면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 이천수가 4개의 오프사이드를 기록했다. 육상선수 출신답게 자신의 스피드를 살리며 끊임없이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던 티에리 앙리(프랑스)는 무려 18개의 오프사이드를 범했다.
이번 대회에서 거의 모든 팀들이 '지지 않는 축구'로 미드필드부터 강한 수비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속공은 상대 수비를 허물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속공 연결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3경기 가운데 오직 11개의 속공을 펼치며 전체 23위에 그쳤다. 이처럼 속공이 되지 않았던 가장 큰 요인은 미드필더진에 있었다. 상대의 강한 압박을 푸는 열쇠인 미드필드의 패싱 게임이이 실종됐다는 의미.
이호와 김남일은 거의 전진 패스를 하지 못했고, 기대를 모았던 이을용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박지성마저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윙 포워드로 뛰면서 한국의 중원은 사실상 횡패스나 백패스에 의존한 플레이만 하기에 급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다 수비수들의 패스도 너무 거칠어 효과적인 속공은 거의 나오지 못했다.
1위는 40개의 속공을 했던 이탈리아이며 2위는 39개의 독일, 3위는 37개의 포르투갈이 차지했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스티븐 아피아, 미카엘 에시엔 등 막강 미드필드진이 포진하고 있던 가나와 '골잡이' 디디에 드록바를 목표점으로 한 빠른 공격을 펼쳤던 코트디브아르가 27개로 속공부문 공동 5위에 올랐다는 점. '스피드 전쟁'에서 아프리카가 유럽 축구에 근접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국은 수비에서도 적극성이 떨어졌다. 태클 숫자에서 한국은 72개로 전체 22위를 기록했다. 과감한 태클로 상대 공격의 예봉을 끊었던 독일(220개), 이탈리아(187개)와는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태클 가운데 기술적으로 공만을 걷어내는 태클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선수가 했던 태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 전에서 이영표가 페널티 지역에서 득점 기회를 잡은 앙리에게 했던 태클이다. 자칫 페널티 킥을 내주거나 단독 찬스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영표는 프리미어리거 답게 앙리를 막아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팀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수비수의 태클 능력이다. 결정적 위기 상황에서 수비수의 태클은 팀을 구해낼 수 있다. 이 점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는 이탈리아의 중앙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다. 중앙 수비수로는 단신인 176cm의 칸나바로는 완벽한 위치선정으로 상대 공격을 제압했다. 칸나바로는 정확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에게 웬만해서는 뚫리지 않는 이탈리아 축구의 튼튼한 방패였다.
또한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중원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드필더들의 태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태클 부문에서 각각 1,2위를 차지한 프랑스의 파트리크 비에라와 이탈리아의 젠나로 가투소가 이 범주에 들어가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수비라인 앞에서 태클로 확실한 바리케이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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