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
박노자 교수(32)는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 학자다.
박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지닌 소장파 역사학자라는 점 외에도 '티호노프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을 가졌던 러시아 출신 청년의 시각으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금기시 하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저술활동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을 찾아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에서 근대 계몽기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 박 교수를 8일 밤 강의가 끝난 후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강의실에서 만나보았다.
박 교수는 역사학자 입장에서 노무현정권의 성격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진단하고 "노무현 당선자는 대통령이 된 후에 파시즘의 잔재인 국가보안법과 레드컴플랙스를 청산하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알고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이 도발하면 전쟁이 날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지역적인 이익이 직결되어 있어 계속 딴지를 거는 것이고 그 대리인(agent)이 한나라당과 일부 '일전불사파' 세력들"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강조하고 "지배계층이 만든 이런 구조를 뚫고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하여 투쟁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노무현정권의 성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
프레시안 : 이번 귀국의 목적은?
박노자 : 한국냄새도 그립고 해서 왔다. 또 귀국에 맞춰 강의가 몇 개 준비되기도 했다. 지난 달 19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일정으로 왔다.
프레시안 : 이번에 국내에서 강의하는 내용에 교수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박노자 : '교과서에 나온 상식' 깨기다. 친일·반일의 흑백논리 그리기가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역사는 순백이 아니라 온통 그레이한(회색적인) 것이 대부분임을 알리고 싶었다.
프레시안 : 노무현정권의 출범을 역사학자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가?
박노자 : 학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해 보면 역사적 관점에서 노무현 정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보는 것 같다. 1987년까지 한국이 파시즘의 지배에 있던 사회였다면 이후 민주화 단계로 들어서면서 파시즘의 혐오스러운 제도들을 제거하는 일이 계속적으로 진행됐다. 노무현 당선자는 대통령이 된 후에 파시즘의 잔재인 국가보안법과 레드컴플랙스를 청산하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알고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본다.
***10년쯤 후에는 중도보수와 중도좌파간의 싸움이 될 것**
프레시안 : 그렇다면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보는 한국정치의 발전 방향은?
박노자 : 10년 쯤 후에는 중도보수와 중도좌파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한국 중산층의 형성을 관찰해도 그런 방향으로 예상된다.
프레시안 : 과연 한국사회에서 좌파가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보는가?
박노자 : 유럽으로 치면 주변부인 남유럽의 그리스나 스페인도 한국하고 실제적인 경제수준은 비슷하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정치만 잘 한다면 10년 후 정권획득이 가능한 세력이 될 것이다. 그때 실제로 집권을 할지는... . (웃음) 예언자가 아니라 나도 알 수가 없다.
프레시안 : 민주노동당 지지자로 알고 있는데 진보세력에 조언을 한다면?
박노자 : 내부의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왜 사회당과 합치지 않는지 묻고 싶다. 대학에서는 양쪽 지지 세력이 함께 연대하고 있다. 학연이나 지연, 경력을 떠나 하나로 연대하길 빈다. 한국의 상황에서 두개의 진보정당은 사치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에 대해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고 있나?
박노자 : 문제는 미국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북한의 당면과제는 세계체제로의 편입이다. 북한의 지도부는 북한을 '제2의 중국'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지도세력들의 특권과 위치를 그대로 보장 받으며 좋은 조건으로 한·중·일 경제에 편입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동의를 한 것으로 보이고 한국도 김대중 대통령 집권 후 중도보수가 집권하며 합의가 이뤄지는 것 같다. 일본도 여러 과정이 있지만 이를 인정하는 것 같다. 극동지역에서 이탈세력은 한나라당 뿐이다.
미국이 도발하면 전쟁이 날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지역적인 이익이 직결되어 있어 계속 딴지를 거는 것이고 그 대리인(agent)이 한나라당과 일부 '일전불사파' 세력들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박노자 : 무슨 위험이 있다는 것인가? 북한의 실제 GNP가 남한의 4%라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은 조종사가 비행연습할 휘발유도 없어서 전투기 조종 실력이 떨어진 나라다. 아마 삼성이라는 일개 기업이 가진 달러나 경제력이 북한보다도 더 클 것이다. 김정남(김정일 아들)이 일본 디즈니랜드 가려고 (한국) 위조여권 쓰다가 잡히고 프랑스 디즈니랜드에도 비자가 안 나와서 못 간 나라다. 그쪽 지도부에 있다는 사람들이 디즈니랜드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반도는 결국 사막이 될 것**
프레시안 : 일부 사람들은 그럴수록 신음하는 대다수 북한동포를 살리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박노자 : 전쟁이 나면 북한이 미사일로 남한의 원자력 발전소를 공격한다고 생각해보자. (박 교수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말을 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반도는 결국 사막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좋은가? 한국에는 전쟁이 나기를 바라는 국민도 거의 없는데... . 전쟁나면 자기들은 나서지도 않을 사람들이 꼭 그런다. 부시 같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세상에서 전쟁을 하자고 나서는 것은 정상이 아닌 웃기는 사람들이다.
***현재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프레시안 : 현재 한국사회에 가장 큰 문제를 지적한다면?
박노자 교수 : 현재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다. 노동시장의 50%를 넘는 부분을 비정규직 노동자가 맡고 있다. 노동계급의 의식형성도 안 된 상태에서 벌써 계층간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아직 자의식이 완전히 형성되지도 않은 노동계층이 귀족처럼 누리는 정규직과 천민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으로 나눠졌다.
정규직은 마치 유럽주변부의 제1세계(스페인·그리스·아일랜드) 같은 수준의 안락을 누리고, 그 안락은 비정규직의 피와 땀으로 유지된다. 지배계층이 만든 이런 구조를 뚫고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하여 투쟁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 된다.
프레시안 : 그런 갈등에 대한 외국의 극복사례가 있는가? 그리고 고칠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가?
박노자 : 유럽은 우선 비정규직이 이렇게 높은 비율로 올라간 예가 없다. 단기취업 외국인노동자 문제가 유사하긴 한데 유럽의 경우 노조들이 외국인노동자와 연대하여 싸움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솔직히 고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프레시안 : 외국인 노동자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박노자 : 다른 문제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패키지처럼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아직 국가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서 이제는 이민정책과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 외국인노동자에게도 노동3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육의 문제다. 국사를 아시아사로 전환해서 가르쳐야 한다. 50년이 지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라보다는 지역개념이 중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계인이 되어야 하지만 우선 아시아인이라는 자각이 있어야한다. 특히 외국인노동자 대부분이 아시아인이라는 것도 한 이유다. 노 당선자가 집권 후 꼭 해야 할 일이 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군대는 구타로 만들어진 군대**
프레시안 : 박 교수 자신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군내 구타가 없다면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한 것인가? 또 한국에서는 군대를 '사람'을 만드는 최종적인 교육기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노자 : 한국 군대는 구타로 만들어진 군대다. 한국군은 일본군대의 후신이고 미국식이 섞여 있는데 일본 군대는 구타로 만들어진 군대였다. 소련 군대도 그랬다. 구타를 없앨 수가 없다. 군대에서 '마지막 교육'을 한다는 것은 국가획일주의이고 더욱 무서운 모습일 뿐이다. 복무의 형평성에 관한 문제는 대만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사회봉사 등 3년간의 의무복무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
***좌파 한국학 학자이기 떄문에 주목**
프레시안 : 왜 한국사회의 여러 매체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박노자 : (웃음) 북극곰이 말을 하면 재밌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농담이다. 아마도 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좌파 한국학 학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 한국학을 하는 외국학자 중에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것은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교수 정도이고 유럽의 한국학 학자들은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연구의 연장선에서 시각이 머물고 있다. 또한 그들은 한국 내의 보수적인 세력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련 붕괴 후 자본주의가 러시아를 망치는 것을 봤다. 거기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프레시안 : 새로 나온 책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기 바란다.
박노자 :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서구화를 한국인의 눈으로 본 것이다. 한국은 서구화를 공공연하게 모델로 삼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나쁜 전철은 밟지 않게 서구의 어두움도 알아야 한다. 인종문제라든지 배타의 논리, 타자관등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프레시안 : 지금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장점과 단점을 말한다면?
박노자 : 도식적이 될 수도 있지만 장점은 한국보다 부유한다는 것, 2차대전 때 나치의 침략으로 파시즘을 경험했고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자유주의가 아주 내면화 됐다는 것이다. 물론 내부의 식민지는 있었지만 유럽국가 대부분이 지닌 식민지경영의 경험이 없다. 그래서 비교적 제3세계에 열려 있고 인종차별이 덜 심한 편이다. 자유주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단점은 근대프로젝트의 강화로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개념이 거의 파괴됐다. 17살이면 집을 나와 (가족이) 남남이 된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가족이 더 이상 아니다.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파괴되고 철저한 타인간의 이익집단이 있을 뿐이다.
프레시안 : 새해 목표 같은 것이 있다면?
박노자 : 다른 사람을 볼 때 민족이나 국가 같은 선입관을 갖지 않고 편견이 없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냥 그 사람 자체를 보자는 것이다.
프레시안 :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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