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추락으로 인해 조종사 두 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지 꼭 20일째 되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민원실 앞에서 사고 전투기였던 F-15K의 도입을 전면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날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상임대표 홍근수·문규현)의 회원을 비롯한 30여 명의 사람들은 지난 7일 일어난 사고는 조종사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기체결함 때문이라며 국방부에 도입 중단을 요구했다.
"비행착각 방지 시스템 자랑하더니…결국 기체 결함 아닌가?"
공동길 평통사 평화군축팀 국장은 "사고 전투기가 1만 피트가 넘는 상공에서 사라졌다"며 "이 위치에서 바다까지 강하하는 데는 최소 10~20초가 걸리는데 베테랑 조종사 두 명이 동시에 비행착각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공동길 국장은 F-X 사업 당시 시험평가부단장을 역임하면서 국방부의 외압에 대한 양심선언으로 해직된 조주형 예비역 공군대령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조종사의 비행착각이 사고 원인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 국장은 또 "F-15K 도입 당시 국방부는 F-15K에 비행착각 방지 시스템이 장치돼 있다고 자랑했다"며 "따라서 설사 조종사가 비행착각 현상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인 만큼 그 역시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발신장치 없는 블랙박스도 있나?"
사고 당시 국방부는 블랙박스를 회수해 비행정보를 분석하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고 발생 3주가 지나도록 블랙박스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심해에 떨어진 경우 블랙박스의 정보 보존기간은 30일 정도로 이제 겨우 10일 가량이 남은 셈이다.
이처럼 블랙박스 회수에 군 당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고기에 장착된 블랙박스에 발신장치가 장착돼 있지 않은 까닭으로 알려졌다. 공 국장은 "블랙박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위치 추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발신장치를 부착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것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다른 이유들을 다 제쳐놓더라도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F-15K 도입 중단의 사유가 된다"며 "국방부는 블랙박스에 발신장치가 달려 있지 않은 이유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 책임져야 할 국방부와 보잉사가 조사 주체?…민관합동조사위 구성해야"
집회 참석자들이 또 문제시한 것은 사고 원인의 조사 주체와 관련한 것이었다. 현재 국방부와 미국의 보잉사가 공동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이 둘은 사고 원인이 기체 결함으로 드러날 경우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하는 당사자들이라는 얘기다.
집회 참석자들은 보다 공정하고 명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민관합동조사위원회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이들은 "민간전문가에게 사고 자료의 접근을 보장하고 민관조사위가 정기적인 공개 브리핑을 통해 조사과정 및 결과를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사고 전투기와 함께 편대비행을 했던 조종사의 목격 진술이 사고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며 "이들 조종사의 공개 기자회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F-15K는 국방부가 차기 주력 전투기로 선정해 총 40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4대가 도입돼 있으며 2008년까지 나머지 36대가 추가 도입된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한 항의서한에서 "국방부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에게 돌리게 된다면 그것은 제2, 제3의 똑같은 사고를 낳아 우수한 조종사들을 계속 희생시키게 될 것"이라며 "이미 기체결함으로 원인이 드러난 이상 지금이라도 F-15K의 도입을 즉각 중단하여 4조 원에 이르는 혈세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조종사들은 말이 없다.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말 기체 결함에 의한 '인재'였는지 여부에 대한 규명은 절실한 문제다. 사고 20일이 지나도록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국방부가 이들이 제기한 의혹에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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