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관계위원회(CFR)의 남미 담당 이사인 줄리아 스웨이그가 25일 출간한 자신의 저서 <오발(Friendly Fire) : 반미의 세기에 친구 잃고 적 만들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반미'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흐름"
이 책에서 스웨이그는 미국과 미국인,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세계 각국의 평가를 바탕으로 전세계에서 '반미'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인들이 미국을 보는 시각도 적시하고 있다.
한국에는 미국에 연대하는 '연미(yonmi: associate with America)', 미국에 저항하는 '항미(hangmi: resist America)', 미국을 혐오하는 '혐미(hyommi: loathe America)', 비판하는 '비미(pimi: criticize America)'를 비롯해 '친미(chinmi: pro-America)', '반미(banmi: anti-America)', '용미(yongmi: use America)', '숭미(sungmi: worship America)' 등 8개의 단어가 존재한다며 이는 "복잡한 한미관계의 모호성을 정의하기 위해 한국어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어휘를 망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작곡가 윤민석 씨가 지난 2001년 쇼트트랙 판정 시비를 소재로 작사·작곡한 'Fucking USA'의 가사를 그대로 실으며 한국의 반미 경향의 배경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한국의 반미 경향의 역사적 원인에 대해 그는 일제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필리핀과 조선을 맞바꾼 미국-일본 간 거래와 일본 패망 이후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던 얄타회담 등이 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가 '기술적인 의미'에서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던 한미연합사에 어떤 통지도 없이 병력을 광주로 이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 미국이 대량학살을 승인 혹은 묵인한 것처럼 한국인들을 오도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과 노근리 양민학살의 폭로, 여중생 사망사건 등으로 한국의 반미 감정은 더욱 심화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지난 2004년에는 한국인의 40%가 북한이나 중국보다 더 큰 안보위협 상대로 미국을 꼽는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동유럽과 인도, 일본만이 그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이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경향은 이미 한국을 넘어 전세계 대륙과 문화를 통틀어 공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직 동유럽과 인도, 일본만이 그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5일 이 책의 서평에서 친미 성향의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료사의 말을 인용해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었다. 료사는 2004년 6월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와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상황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자살 공격이나 모든 폭탄보다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더 많은 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군사력은 점점 증강됐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강제가 아닌 유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지난 몇 년간 분명히 감소해 왔다"고 평가했다.
"반미는 실제 미국의 힘을 행사하는데 방해가 된다"
미국에 대한 반감, 즉 '반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이 불쾌함을 넘어 실제 미국의 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스웨이그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일례로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터키에서 지난 2000년 52%에 달했던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3년 만인 2003년 12%로 추락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터키는 이라크전 당시 미군이 자국 영토를 경유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또 멕시코의 빈센테 폭스, 칠레의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과 같은 친미 지도자들이 자국 내의 반미 감정 때문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하지 못했던 것도 '반미'가 실제 미국의 정책과 행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예로 꼽았다.
"가장 좋은 광고는 나쁜 상품 팔지 않는 것"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경향이 바뀔 수 있을까? 스웨이그는 "반미의 구조적 기반은 여전히 뿌리 깊이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이제 미국인들에게는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전세계를 여행할 때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캐나다인이라고 거짓말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많은 돈을 방송과 대(對)민간 외교에 쓰고 있지만 가장 좋은 광고란 질이 좋지 않은 상품을 팔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어떻게 대민간 외교가 고문의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결국 해법은 미국이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문을 금지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반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이 책의 충고를 따른다면 "반미가 반드시 21세기를 지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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