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하는 해괴망칙한 법 때문에 글쓰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표 몇 개 만들어 제시해 놓으면 그만일 것을 이리 저리 말을 비틀어 가며 글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도 어쩌랴. 붙잡혀 가지 않으려면 고분고분 말을 들을 수밖에.
오늘의 결론은 한마디다.
지금 모두들 부산경남 민심이 이번 선거의 최대 변수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 나타나고 있는 이-노 두 후보 사이의 뚜렷한 격차다.
***PK의 3배 넘는 수도권에서 앞서는 노무현**
지난 9월 30일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금년 예상 유권자수는 모두 3천5백11만여명이다. 그중 서울, 경기, 인천을 합치면 1천6백46만여명, 46.4%, 거의 절반이다.
부산ㆍ경남은 합쳐봐도 5백5만여표, 14.4%에 지나지 않는다. 수도권의 1/3이 되지 못한다. 물론 부산, 경남이 대구, 경북이나 호남권 혹은 충청권보다는 많다. 권역별로 구분할 때 수도권에 이은 2위 지역이긴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도권의 1/3이 안된다.
그런데 이 수도권에서 현재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두 자리 수 넘는 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앞서가고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도권의 1% 포인트 차이는 부산, 경남의 3% 포인트 차이를 넘는다. 결국 수도권에서 10% 이상 앞서간다는 것은 부산, 경남에서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거의 40% 가량 앞서 가야만 극복할 수 있는 차이를 말한다.
***'97, '92 대선에 비해 수도권의 양대 후보 격차 매우 커**
후보등록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와 지난 3일 1차 TV 합동토론 이후 조사된 여론조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두 후보의 전체 지지율 차이는 대동소이하다.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여론분석 전문가들은 지역별 차이, 특히 수도권에서 노 후보가 이 후보를 앞서는 차이가 약간씩이나마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흔히들 수도권의 표심은 정치이슈의 변화에 따른 가변성이 크다고들 평가한다. 하지만 공식 선거전 돌입 이후 열흘 이상 수도권의 노-이 격차가 유지되고, 약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추세가 상당히 고정화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대선 당일까지 표심의 흐름을 예측할 때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다.
참고로 지난 97년 대선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는 서울 44.3%, 경기 38.9%, 인천 38.0%를 얻어 당시 이회창 후보의 40.4%, 35.1%, 36.0%를 앞섰다. 하지만 그 차이는 4% 포인트를 넘지 못핶다.
지난 92년 대선에서는 당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수도권 내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서울은 DJ 승, 2% 포인트 차. 경기와 인천은 YS 승, 하지만 차이는 고작 4.2% 포인트(경기), 5.4% 포인트(인천)에 불과했다.
이러한 전례에 비추어 서울, 경기, 인천지역 모두에서 고르게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두 자리 수 이상의 퍼센트 포인트 차로 앞서간다는 것, 이건 이번 대선의 최대 변화중 하나라 할 만하다.
***40대, 특히 수도권 40대 표심에도 유의미한 변화**
또 하나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40대 표심이다.
이번 대선은 세대간 대결이란 특성을 보인다. 20-30대는 노무현 후보, 50대 이상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여기서 40대가 어디로 움직이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30대의 인구는 50대 이상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투표율은 낮다. 그래서 20-30대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40대의 절반만 나눠 갖게 되면 승리는 따 논 당상이다. 반대로 50대 이상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40대를 거의 장악하게 되면 팽팽한 대결이 된다.
그런데 최근 연령별 지지도에서 발견되는 유의미한 변화는 40대에서 노 후보 지지층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후보 등록 직후 공개된 조사에서 40대의 경우 이 후보가 노 후보를 앞섰지만, 최근 조사에선 거의 엇비슷하게 나눠 갖는 결과가 나온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변화를 앞서 언급한 수도권의 격차 확대와 연결시켜 보면 한마디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수도권 40대의 노 후보 쪽 쏠림현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수도권 40대의 노 후보 지지 확대. 이건 한나라-민주 양당이 각기 주장하는 바에도 이미 들어 있다. 민주당은 줄곳 수도권 우위, 여론주도층인 40대의 지지 확대를 자랑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최근 부산, 경남권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자랑한다.
양쪽이 주장하는 바가 다 맞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전체 지지율 차이는 큰 변화가 없다면 결국 부산, 경남에선 이 후보 지지가 증가하고, 수도권에선 노 후보 지지가 증가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40대가 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연 누가 이길까, 예측 불허**
역대 선거에서 표심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보면 앞날을 예측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된다. 그런데 과거의 변화는 두 방향이 공존한다.
첫째 40대 지지가 변화하는 방향으로 전체 지지가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여론주도층인 40대의 힘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둘째 모든 선거에서 지역주의는 막판에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처음엔 영남, 호남, 충청 각 지역에서 불기 시작하지만 결국은 수도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지역정서가 한 방향으로 뭉쳐가다가 나중엔 수도권에 거주하는 각 지역 출신 사람들에까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특히 영남 지지도가 변화하기 시작하면 서울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고, 충청 지지도가 변화하기 시작하면 경기, 인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은 현재 확인되는 '수도권에서의 노 후보 대폭 우위'가 이대로 굳어질 것인지, 앞날을 점치기 어렵게 한다.
40대 지지 증가라는 점에서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경남권과 충청권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수도권 지지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이제 막판 접점이 모아진다.
중앙정치 이슈 변화에 민감한 수도권, 특히 40대의 표심을 노 후보가 계속 잡으면 노 후보가 당선된다.
반면 정치 이슈 싸움에서 이 후보가 선전하기 시작하면, 또 두 후보의 지역 공략에서 현격한 실력차가 나타난다면 이 후보가 당선된다.
과연 누가 이길까?
참고로 선거 당일 출구조사까지를 포함해서 투표가 끝나자 마자 당선자를 예측해야만 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마지막 날까지 계속 밤 새워야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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