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권의 실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8일 충북 청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식 문제로 항의하는 학부모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한 일이 알려지면서, 이런 주장에 힘이 실렸다. 진보와 보수의 구별도 없다. 종종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해 왔던 교총과 전교조가 '교권의 침해'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18일 청주에서 발생한 사건을 꼭 '교권의 침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야 할까? 흥분한 여론에 떠밀려 간과해버린 문제들은 없을까?
18일 청주에서 발생한 사건은 학교 급식 환경의 문제가 발단이었다. 그런데 학교 급식의 문제는 이번에 처음 불거진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일부 학교에서 급식에서 남은 밥을 학생들에게 억지로 먹여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됐다. 또 급식 재료의 위생상태에 대한 문제제기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열악한 학교 급식 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왜 학부모들이 그렇게 거친 방식으로 문제제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소 학부모들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만을 자연스레 토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교총이나 전교조가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교권' 역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사건의 귀결점이 전통적인 사제관계로 돌아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함의를 갖고 있는 '무릎 꿇은 교사'사건이 단지 허물어져 가는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한 여러 시각을 통해 교총과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권의 개념이 현실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부모들의 분노 "점심식사 늦게 했다고 벌 주다니…."
'무릎 꿇은 교사' 사건은 지난 18일 청주 시내 한 초등학교의 회의실에서 벌어졌다. 이 학교 2학년 학급의 학부모 5명이 찾아와 해당 담임교사의 징계를 거세게 요구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담임교사가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에게 급식을 빨리 먹도록 강요해 학생들이 체하거나 구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정해진 식사시간(15분)을 못 지킬 경우,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체벌을 가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해당 교사가 급식지도에서뿐만 아니라 수업과정에서도 과도한 체벌을 가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을 제출하기도 했다.
항의가 계속 이어지자 해당 교사는 학부모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무릎 꿇은 교권"…교총, 전교조 한 목소리로 성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교사가 학부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로 교권이 추락했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다음날 '학부모의 여교사 교권침해 행위를 개탄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교총은 "학부모의 과격하고 무분별한 요구에 대해 교사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일이 발생한 것은 교권 침해를 넘어 인권 침해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이에 동참했다.
전교조는 19일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교권 침해 사례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면서 "그것은 일부 정치인과 교육당국, 보수언론이 앞장서 교사들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있는 데 기인한다"라고 주장했다. 교육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는 교총과 전교조가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낸 셈이다.
대부분의 언론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이 사용한 '무릎 꿇은 교권'이라는 표현은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평균적인 시각을 잘 보여준다.
학부모들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자 교총은 초강수를 발표했다. 해당 학부모들을 고발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담임교사의 징계를 요구하며 학교를 찾아가 항의했던 학부모들은 공개사과를 했다. 하지만 교총은 해당 학부모 고발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열악한 학교 급식 환경, 학교의 폐쇄적인 의사전달 구조도 지적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중고등학생연합회에서 활동하는 박성기 씨는 20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식당이 비좁아 한 시간 동안 7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세 조로 나뉘어 번갈아 15분씩 밥을 먹고 나와야 할 정도로 열악한 학교 급식 환경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학교 급식의 문제점을 계속 지적해 왔던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이빈파 공동대표도 이런 지적에 공감했다. 학부모들이 명백하게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 때문에 학교의 열악한 급식환경이 가리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공동대표는 "비좁은 식당에서 전교생이 식사를 하는 열악한 급식환경은 오래 전부터 문제가 돼 왔다"면서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합리적으로 공론화할 수 없었던 학교의 폐쇄적인 의사전달 구조를 지적했다.
그는 "자녀의 교육을 학교에 맡기고 있는 한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면서 "학부모들이 학교와 교사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정상적인 방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던 것이 이번처럼 폭력적인 사태를 낳았다"라고 덧붙였다.
교권 회복이 아닌 교사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게 타당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나왔다. 교사와 학부모 중 어느 한 쪽을 일방적인 약자로 간주하고, 한 쪽이 다른 한 쪽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대립으로 이번 사건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교 내의 인권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 왔던 인권운동사랑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이번 사태를 보다 입체적인 시각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 씨는 이번 사태에서 어느 한 쪽을 일방적인 약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앞서 이빈파 공동대표의 말처럼 자녀가 학교에서 겪을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학교 관계자 앞에서 학부모가 약자가 된다는 지적도 타당하지만, 무릎을 꿇었던 교사 역시 사건이 발생할 당시의 상황에서는 약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해당 교사가 나이 많은 남성이었다면, 과연 이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여러 학부모들의 항의에 직면한 교사가 '다중의 위력'(여러 사람이 한데 뭉침으로 인해 발휘되는 힘)에 의한 위협을 느낀 것은 사실이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맞물리면서 위협은 더욱 증폭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일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종례 중이던 여교사가 해당 학급의 학생으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지난 3월에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동료교사가 기간제 여교사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터졌다. 여교사들이 학교에서 겪는 폭력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물론 여교사들만 이같은 폭력에 노출된 것은 아니다. 지난 13일에는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중년의 남성 교사가 술자리에서 교감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충격으로 자살한 사건도 일어났다.
배 씨는 이같은 폭력과 인권 침해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배 씨는 이와 같은 사건들을 '교권이 무너졌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데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인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므로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교권 수호'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배 씨는 전통적인 사제관계가 설정하고 있는 교사의 권위를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교권'에 집착하기보다 그것을 세분화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 씨는 '교권'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 번째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사가 직장에서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다. 최근 벌어진 사태에서 교사가 침해받은 권리가 그것이다. 즉 해당 교사들은 교권이 아니라 인권을 침해당한 것이다. 따라서 '무너진 교사의 교권을 회복하자'는 게 아니라, '교사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 앞에서 보장돼야 할 교사의 수업권"…"학생 인권보다는 하위의 권리"
두 번째는 교육의 한 주체로서의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이끌어 가고,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이다. 배 씨는 국가 혹은 학교 관리자가 교사의 수업에 대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같은 권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 씨는 이런 권리를 인권처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교사의 자율적 수업권이 그 보다 상위의 권리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교사의 자율적 수업권은 대외적으로는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지만, 대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교사의 수업에 대한 학생이나 학부모의 문제제기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배 씨는 교사의 자율적 수업권만을 강조할 경우, 학생들이 교사의 성향에 따라 다른 교육을 받게 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교사를 만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단지 운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는 것이다.
"'교권 회복' 주장이 교사의 일방적 권위 복원하는 것이어선 안돼"
세 번째는 가르치는 이로서의 교사가 자연스레 갖게 되는 권위다. 배 씨는 "학생과 교사가 교육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권위"가 아니라, 단지 교사이기 때문에 학생 앞에서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교사의 권위는 교육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결과물일 뿐, 처음부터 강제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교총이나 전교조가 이번 사태를 통해 침해됐다고 주장한 '교권'이 이런 권위를 가리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배 씨는 "최근 학교의 두발 규제나, 종교계 사립학교에서의 강제적인 종교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에서 엿볼 수 있듯 학생들의 인권의식은 계속 성장해 왔다"면서 "그런데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에는 이런 변화가 반영돼 있지 않은 듯하다"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학생인권 문제를 고민해 온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지적을 듣다보면, 이번 사건이 그리 간단한 맥락에 놓여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교권을 지키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이 문제의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교권의 침해 혹은 회복이라는 대립 구도를 넘어서야 할 때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가야 할 것인지 보다 풍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교권을 지키자는 주장은 이와 같은 논의가 무르익어 가는 과정 속에서 제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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