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강금실(열린우리당), 오세훈(한나라당) 두 후보는 공식선거전 이틀째인 19일에도 강북지역 공략에 총력을 퍼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접근법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강 후보는 격정적인 연설로 청중들에게 다가선 반면, 오 후보는 환경미화원들과 새벽 청소를 함께 하는 등 조용한 스킨십 강화에 주력했다.
강금실 "우리당도 한나라당도 아니다"
강금실 후보는 이날 건대입구→성수동→왕십리→금호역→용산역→공덕동→신촌으로 동선을 정했다. 주로 한강을 따라 이동하는 경로로 강금실 캠프는 이를 '강 따라 사람 따라'라고 명명했다.
성동구 유세에서 강 후보는 "열린우리당도 아니고 한나라당도 아니다"며 "정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고 인물론을 적극 강조하며 "시민을 향한 진심을 가지고 살림꾼 정치를 펼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왕십리 뉴타운 문제' 등 지역현안을 거론할 때는 "힘 있는 여당시장, 여당의 후보만이 해날 수 있다"고 전통적인 '여당 시장론'을 강조했다.
강 후보는 이어 "강남구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17개 있는데 성동구에는 단 3개밖에 없다"며 "서울이 부자면 뭐 하냐. 강북은, 성동은 아직 어렵다. 이 강금실이 고루 잘 살게 만들겠다"고 강남북 간의 교육 격차를 강조했다.
용산역 유세 때는 후보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다 경찰에 강제 연행된 KTX 여승무원 30여 명이 한 줄로 늘어서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강 후보는 "저 분들이 우리 사무실에서 일주일 동안 농성을 하셨다"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이렇게 어두운 면들이 많다"고 넘겼지만, 일부 조합원들은 "경찰이 우리를 끌어낼 때 캠프 관계자들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 후보는 이동 중에도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공식선거전이 시작되니까 좀 흥분도 되고 더 힘이 나는 것 같다"면서 "아직은 피로한 줄도 모르겠고 목도 괜찮다"고 말했다. 강 후보는 "유세 취재하니까 재미있지 않아요"라고 기자들에게 되묻기도 했다.
이날 유세장에는 강 후보의 친언니들도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지근거리에서 유세에 동행한 강 후보의 둘째 언니는 "자기가 워낙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재미있어 하니까 식구들도 적극 지원이다"면서 "평소 때보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강 후보의 유세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금문 시장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 상인은 "얼굴도 이쁘고 사람이 똑똑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워낙 당 지지율이 낮은데 뒤집기가 쉽겠냐"고 말했다.
오세훈 "내년 대선에서 정권 찾아와야"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이대 앞 사거리부터 신촌까지 환경미화원들과 거리를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오 후보는 "여러분 때문에 서울 거리가 깨끗하다. 공해에 찌들은 서울을 일류도시로 만들자"며 '환경시장' 컨셉을 이어갔다.
지지율에서 한참을 앞서 있는 점을 의식한 듯 대중 연설을 통한 직접적인 지지호소 보다는 자연스럽게 서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쪽이었다.
그는 서울시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창립대회에 참가해선 "시내를 다니다가 밤 늦게 호텔 주변에 늘어선 택시들은 보면 생계는 괜찮으신지 걱정이 되더라"면서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심도있는 고민을 통해 근심을 덜어드리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오 후보는 거리유세를 오후부터 시작했으며 성북역→창동역→영등포역 등 3곳만 소화했다. 창동역 앞에서 벌어진 유세에서 오 후보는 300여 명의 지지자들에게 고무됐는지 "3년 전 대선에서 우리는 피눈물을 흘렸다"며 "앞으로 1년6개월 뒤에 있을 대선에서는 반드시 정권을 찾아 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박근혜 대표와 마찬가지로 '대선 길목론'을 강조하며 여권의 무능을 부각시키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인 강금실 후보를 자극시킬만한 직접적인 발언은 일체 나오지 않았다.
기자들과의 거리낌 없는 대화를 주고받은 강 후보와도 사뭇 달랐다. 선거운동 초반의 소감을 묻자 오 후보는 "긴장될 따름"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오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공식 일정으로 정해진 인터뷰 외에는 질문을 받지 않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라며 더 이상의 질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냉랭한 강금실-오세훈 조우
강, 오 후보는 이날 오후 잠실 재향군인회관에서 열린 시각장애인연합회 주최의 시각장애인복지대회에서 조우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후보는 간단한 악수로 인사를 교환했을 뿐이었다.
이 자리에서도 양측의 확연한 태도 차이가 드러났다. 오 후보는 "장애인연금법 등 현안이 꼭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간단히 연설을 마쳤다. 반면 강 후보는 감정 섞인 목소리로 "고통을 아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며 "장애인들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얻어내고, 결국 승리하도록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장에선 한 시각장애인이 오 후보 캠프에 기증했다는 로고송이 흘러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느닷없이 '기호 2번 오세훈'이라는 후렴구가 울려 퍼지는 동안 역풍을 우려한 오 후보는 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몇몇 시각 장애인들은 "여기가 선거유세장이냐, 뭐 하러 왔냐"고 거칠게 항의했고, 이내 로고송 방송은 중단됐다. 오 후보는 자신의 인사말을 통해 "행사 진행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대신 사과하기도 했다.
민주당 박주선 후보는 자신의 인사말 뒤 오세훈 후보의 로고송 방송에 대해 "오늘 행사를 정치실험장으로 만드는 것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항의했다. 주최측은 "생각이 짧아 오세훈, 강금실 두 후보의 로고송만 준비했었다"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지만 박 후보는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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