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 '정풍' '단일화풍'. 이 세 번의 바람에 맞선 '이회창 대세론'. 16대 대선이 치러지는 2002년 1년의 정치는 이렇게 요약된다.
'노풍'이 변화의 시작이었다면 '정풍'은 예측 불가능한 천변만화의 출발이었다. '이회창 대세론'은 이 두 번의 바람을 막아 냈다.
'단일화풍'은 '노풍'과 '정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이회창 대세론'이 두 바람을 꺾었기 때문에 시작됐다.
이제 마지막 승부다. '단일화풍'이 이길까, '이회창 대세론'이 또 한번 바람을 꺾을까?
***'바람'과 '대세론'의 대결**
남은 기간은 3주일 남짓. 현재는 노무현 후보의 '단일화풍'이 다소 앞선 듯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바람은 초기에 가장 강한 법. 안심할 수 없다.
이제 본선의 구도는 이름 그대로 '바람'과 '대세론'의 대결이다.
'바람'은 변화를 상징한다. 예측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다소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다. 멋스러움을 추구한다.
'대세론'은 안정을 상징한다. 논리적 예측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이론적 판단에 기초한다. 품위를 추구한다.
이회창-노무현 두 진영이 현재 출발선에서 갖고 있는 기본특징들이다.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이제 양측의 선거전략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들의 공통 고민은 하나. 각자가 갖고 있는 기본특징들을 더 강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순화시킬 것인가?
정치학 교과서에 의하면 모든 선거는 결국 중앙으로 수렴한다. 특히 양자구도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중간 지대에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잡기 위해 양쪽 모두 중앙을 향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적 법칙에 따르자면 이-노 두 진영 모두 각자의 특징을 순화시키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 후보는 '대세론'에 안주하지 말고 뭔가 변화를 추구해야 하며, 노 후보는 '바람'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 줘야 한다. 실제 이렇게 충고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향한 두 변화의 민심**
2002년 한국사회에 정치학 교과서는 맞지 않는다. 교과서는 안정적 정치지형을 전제로 씌어진 책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정치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 변화를 바라는 꿈틀거림이 들끓고 있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내용이다.
한쪽은 현 정권에 반대하고 실망한 사람들이 바라는 변화다. 출신 지역 때문이든, 인사와 정책의 난맥상 때문이든, 대북관계에서 드러나는 이념적 차이 때문이든, 어쨌건 현 정권이 싫은 사람들. 이들이 모여 정권교체의 열망을 이룬다. 유력한 대안으로 이미 4년전부터 우뚝 서 있는 이회창을 선택한다. 이것이 '대세론'이다.
다른 한쪽은 한국정치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라는 변화다. 아예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오늘날의 정치행태에 수준 높은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들이 함께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에 노무현이, 정몽준이, 이젠 두 사람의 단일화가 응답했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
결국 '바람'과 '대세론'의 충돌은 둘 다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 내용과 방향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이 후보에게 '대세론'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추구하라는 주문, 또 노 후보에게 '바람'에만 기대지 말고 안정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충고는 적절치 않다. 이 후보의 '대세론'은 이미 정권교체란 변화가 전제된 것이다. 노 후보의 '바람'은 안정감이 있었다면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었다.
단지 개인적 성향만을 문제 삼는다면 얘긴 다르다. 이회창에게서 '저승사자' 같은 딱딱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좀 더 부드러워지라는 주문, 노무현에게 '철없는 아이' 같은 가벼움이 많으니 좀 더 무게를 가지라는 주문이라면 백번 맞는 충고다. 여기선 중간지대로의 수렴이 가능하다.
그러나 양쪽이 남은 3주일 사활을 걸고 대결할 대선전략의 기본축은 달라질 수 없다. 결코 순화될 수 없다.
각자 자신이 상징하는 변화의 내용을 더 극대화시켜 누가 더 잘 드러내느냐, 여기에 승부가 달려 있다.
***3주일 동안 누가 더 자신을 극대화시킬 것인가?**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는 현 정권의 실정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일에 더더욱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래서 정권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여망의 확산에 주력할 것이다.
"노-정 단일화는 DJP 야합의 복사판이다. 노무현이 말하는 '새 정치'와 '개혁'은 DJ가 저지른 아마츄어식 국정파탄의 확대판이 될 것이다. 정권을 바꿔 이회창 정권의 안정적 국정개혁을 만들어 가자."
이미 한나라당이 시작한 공세이며, 앞으로 3주일 내내 더욱 거세질 주장이다.
민주당과 통합21, 그리고 노무현-정몽준 진영은 지금 불기 시작한 '단일화풍'을 고조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연출해 내는 데 몰두할 것이다.
"지역구도와 붕당정치에 기초한 기존의 선거전략은 소용없다. 시대가 변했다. 우린 다른 정치, 다른 선거운동을 한다. 이회창식 정권교체는 구정치의 연장일 뿐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민주당과 통합21이 펼쳐 보일 득표전략의 핵심이다.
이제 실력 싸움이다.
노 후보 진영은 정 의원과 함께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얼마나 더 많이 얼마나 더 멋지게 보여주느냐에 사활이 달렸다.
이 후보 진영은 현 정부의 실정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그 대안으로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위치 지우느냐에 사활이 달렸다.
3주일 동안 '정권교체'를 향한 변화, '새 정치'를 향한 변화 가운데 어느 쪽 주장이 자신의 실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느냐, 승패는 여기서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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