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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학교, 막힌 들…"그래도 물꼬 트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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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학교, 막힌 들…"그래도 물꼬 트러 간다"

[계속되는 '평택'] '613일'째 주민 촛불집회 열려

고통은 사람들을 좌절케 하지만, 좌절을 극복한 사람들은 더욱 강인해지기 마련이다. 지난 4~5일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큰 좌절감을 맛 봤다. '자식과도 같다'는 들에는 군인들이 들어와 철조망을 쳤고, 주민들이 부지를 구입해 세운 대추분교는 콘크리트 더미로 바뀌어 버렸다. 그들 입장에서는 3년간의 싸움 중 가장 큰 '패배'다.

6일 오후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았다. 대추분교가 완전히 헐려 콘크리트 더미로 변해 있었고,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던 30년이 넘은 키 큰 나무들이 모두 부러져 있었으며, 비가 고인 운동장 바닥에는 농기계들이 고개를 쳐박고 있었다.

대추분교. 1968년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시절, 주민들이 쌀, 보리 몇 말 씩 모아 지금의 땅을 구입해서 흙을 퍼날라 운동장을 다진 뒤 '학교를 지어주십사'고 경기도 교육청에 땅을 기증했다. 이렇게 해서 이듬해 대추분교가 문을 열었다. 한 때는 학생 수가 300~400명에 이르러 독립 초등학교이기도 했다.

대추리 주민들은 이 학교에 자식들을 보내 키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민의 날 행사, 가을 운동회, 각종 경로행사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늘 대추분교였다.

5일 중장비들이 대추분교를 부수던 날. 마을 주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제발 마지막 철거 모습이라도 보게 해달라"며 경찰에게 애원했다고 한다.
▲ 철거된 대추분교. ⓒ프레시안


들은 막혔는데

마을을 가로질러 도두리 쪽 가는 길로 향했다. 5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군인과 범대위 측 시위대가 한바탕 전쟁을 벌인 곳이다. 농로는 뚝뚝 끊어져 있었고, 그 위로는 철조망이 겹겹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으며, 그 뒤로는 군인들이 호를 쌓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철조망 안 쪽 논에는 하얀색 방수포가 씌워진 텐트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린 터라 전투화는 발목까지 빠지고, 논바닥이라 습기도 많이 올라올 텐데, 이런 곳에서의 숙영이 적잖이 고통스러울 법한 풍경이었다.
▲ 철조망으로 가로막고 길을 끊은 뒤 그 뒤에 호를 쌓고 경비 중인 군인들. ⓒ프레시안

그 뒤로 김지태 이장의 우사에서는 정리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정오께 원인모를 불이 났기 때문이다. 우사의 1/3, 특히 소들에게 먹일 건초더미가 거의 다 탔다. 소방관에게 화재 원인을 물었더니, "누전 같은데. 확실한 건 조사해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전의 경우에는 발화지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건초더미가 있었지만 비가 오는 습한 날씨였음을 감안할 때 방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 큰 문제는 불이 났음에도 주변을 경비하고 있던 경찰이 길을 내주지 않아 소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화재 소식에 김지태 이장의 부인이 가장 먼저 달려갔으나, 경찰은 그 마저도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 때문에 소방차 진입도 쉽지 않았다.

"물꼬 트러 가"

문정현 신부는 이날 새벽에 대추리 성당 앞의 '평화동산'에 올랐다고 한다. "여기에 오르면 내리, 도두리까지 들이 한 눈에 보이는데, 가슴이 시원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 신부는 그 동산에서 황새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지켜봤다.

그러던 중 문 신부는 누군가 삽을 들고 지나가는 걸 봤다. 이민강 씨(66)였다. 문 신부가 "어디 가?"라고 소리쳤더니 이 씨는 "물꼬 트러!"라고 화답했다.

이 씨는 인근의 안중에 살다가 1969년, 스물일곱에 대추리로 들어왔다. 부모님 부담 덜어주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객지에 나가 '남의 집 살이'를 하며 돈을 모았다. 8년을 모아서 대추리에 논 5000평을 사서 농사를 지었다. 아내가 7000만 원 사기를 당해 환경미화원으로 8년을 일하기도 했다. 아내가 아파 30년을 병간호를 했다.

지금은 자기 논 3000평만 있고, 나머지 1만5000평은 소작이다. 그래도 그는 '내 땅이려니'하며 농사를 짓는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병만 나지, 내 직업이여"라고 생각하면 힘이 덜 든다고 한다.

문 신부는 "논에는 철조망이 쳐져 들어갈 수도 없는데, 철조망이 들어오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땅에라도 물을 대러 간다. 이게 농부고 이게 삶이다"라고 말했다. 비가 오면 누가 깨울 것도 없이 자동으로 일어나 물꼬 트러 나가고, 텃밭에 푸성귀라도 길러서 자식들 갖다주고, 가을 추수에는 쌀도 퍼다 주고. 이게 농부의 마음이요, 부모의 마음이다."
▲ 원인모를 불이 난 김지태 이장의 우사. ⓒ프레시안

문 신부는 "대추리에 예술가들이 들어와서 근사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지만, 살아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진짜 예술"이라며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이 진짜 예술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저녁 7시30분, 대추리 성당에는 60여 명의 마을 주민과 10여 명의 범대위 관계자들이 모여 촛불 집회를 열었다. 도두리 주민들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도두리와 대추리를 잇는 길을 군인들이 막고 있어 참석하지 못 했다. 이날 촛불 집회는 613일 째.

사실 500일 촛불집회다, 600일 촛불집회다 해서 수백 명씩 모인 가운데 대추분교 운동장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긴 했지만, 수백 명이 모이지 않아도 이렇게 마을 주민들은 모여서 매일 같이 613일 동안 촛불집회를 해 왔고, 4~5일 큰 전투를 치른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끝이라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날 촛불집회 내용의 반은 국방부 성토대회였다. "범대위가 주민들과 국방부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고? 이간질 하는 사람들한테 밥 해먹이고, 숨겨주고, 못 잡아가게 매달리고 한댜? 어림도 없지!", "우리가 여기서 다 내주고 나갈 것 같으면 진즉에 나갔지. 여기까지도 오지 않았어." 여기저기서 분노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범대위가 주민들 조종하고 있다고? 웃기지들 마라 그래. 범대위가 결성된 게 작년 봄인데, 우리는 재작년부터 촛불집회 했어. 600일이 넘었잖어."
▲ 613일째 주민 촛불집회. ⓒ프레시안

김지태 이장의 말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당신은 이미 졌다.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 당신들이 집을 철거할 순 있어도 사람을 철거하지는 못 한다."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에서도 수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촛불집회가 열렸다.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 씨는 "전쟁과 국가폭력을 미화하는 시대에서 평화를 얘기하는 사람은 어쩌면 불순세력이 맞을 수도 있다"며 "문화예술인들이 공동행동에 나서서 반드시 노무현 정부를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는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라며 "끝까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함께 싸우겠다.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결의를 다졌다.

국방부는 오는 6월까지는 미군기지 이전 지역 내 주민들의 주거지에 대해서도 철거작업을 완료할 계획이어서,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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