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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

감독,각본 로잔나 아퀘트 출연 로잔나 아퀘트, 데브라 윙거, 샤론 스톤 외 수입,배급 동숭아트센터 |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97분 | 2002년 제목만으로는 스릴러가 가미된 추적 드라마가 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로드 무비쯤은 돼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 재밌는 것은 로잔나 아퀘트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과거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마돈나의 수잔을 찾아서>의 제목을 슬쩍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영화를 본 지 얼마 안 되는 신세대급 관객들에게나 먹힐 얘기다. 조금 오래된 관객들 혹은 스스로를 영화광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겐 제목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의 데보라 윙거(원래 발음은 데보라 윙어일텐데 무슨 까닭인지 '윙거'가 되는 바람에 모든 저널이 잘못된 발음으로 표기하고 있다)를 생각하면 단박 어떤 영화인지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 ⓒ프레시안무비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자신 스스로도 40대 후반에 다가서는 배우이자 프로듀서이고 이 영화를 통해 감독까지 되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로잔나 아퀘트가 이제 50을 넘어섰으며 40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은막에서 사라진 데브라 윙거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데브라 윙거가 왜 은퇴를 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도입부부터 데브라 윙거가 사는 집이 나온다거나, 아니면 윙거의 출세작들, 그러니까 <사관과 신사>에서부터 <애정의 조건><블랙 위도우><파리가 당신을 부를 때>같은 영화의 클립들이 주절주절 편집돼 보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데브라 윙거의 모습은 이 다큐멘터리의 거의 끝부분에 가서 '짜잔'하고 나타나며 그녀와의 인터뷰는 거창한 제목과는 걸맞지 않게 비교적 짧게 할애돼 편집돼 있다. 데브라 윙거란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로잔나 아퀘트의 자전적인 에세이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윙거도 윙거지만 로잔나 아퀘트는 스스로가 배우로서의 정체성,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살아간다는 것, 특히 여배우로 살아남는 것, 혹은 영화배우라는 유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그 지속성의 가치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있다. 로잔나 아퀘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40을 넘어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답을 구하지 못한 그녀는 그래서, 데브라 윙거를 찾아 가기 전에 그 사전작업의 일환으로 수많은 유명 여배우와 인터뷰를 시도한다. 숀 펜의 부인이자 그 자신이 유명스타이기도 한 로빈 라이트 펜을 위시해서 제인 폰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우피 골드버그, 샬롯 램플링, 엠마누엘 베아르, 샤론 스톤, 다이안 레인, 안젤리카 휴스톤, 대릴 한나, 켈리 린치, 로라 던 등등 도저히 일반 저널리스트라면 만나기조차 어려운 유명 여배우라는 여배우는 다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그녀들로부터 솔직한 얘기들을 듣고, 영화에 담아낸다. 아퀘트의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아하, 다큐멘터리가 이렇게도 만들어질 수 있구나, 도발적인 릴레이 인터뷰만으로도 훌륭한 작품 한편이 만들어질 수 있구나를 깨닫고 무릎을 치게 된다. 다큐멘터리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일단을 담아내는 것이고 그렇다면 인터뷰만큼 주요한 요소가 없을 것이다.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바로 그렇게,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숨은 의미 혹은 틈새의 제작 방식을 잘 살려낸 작품이다. 언뜻 보기에 로잔나 아퀘트는 여배우라는,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여성적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때로 이 다큐멘터리는 여성들의 한스러운 방담 형식까지 지그재그로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로잔나 아퀘트는 여성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래서 이 다큐를 보고 있는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아퀘트의 고민에 대해 똑같은 정서적 질감을 느끼게 된다. 흔히들 그런 걸 '공감'이라고 부른다. 솔직한 자기반성의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또 어떤 내용이든 혹은 미학적 완성도가 높든 그렇지 않든 강한 울림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로잔나 아퀘트는 이번 다큐를 통해 그런 울림을 전해준다. 근데 그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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