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생 학부모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작한 단식농성을 37일만인 지난 17일 끝냈다. 이들은 모두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교육연대)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농성 기간 내내 교육부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단식농성 34일 째였던 지난 14일에야 장애학생 학부모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김진표 교육부총리와 교육연대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장애학생의 유치원 및 고등학교 교육 의무화', '시도 교육청에 장애인교육 전공 장학사 우선배치'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오는 7월 중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연대는 이같은 약속을 받아낸 후 단식을 중단하고 제대로 된 장애인 교육을 위한 다른 과제들에 힘을 쏟기로 결정했다.
***장애학생 4명 중 1명만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현재 만 3세 이상, 만 17세 이하의 학령인구 960여만 명 중 특수교육을 받기를 요구하는 인구는 2.71%에 해당하는 약 2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요구 비중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핀란드의 경우 특수교육을 받기를 희망하는 학생의 비율이 17%에 달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 비중이 각각 7%와 10%다.
전체 학령인구에서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나라별로 큰 차이가 없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수교육을 받기를 요구하는 학생의 비율이 낮을수록 장애인 교육의 여건이 열악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게다가 특수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모두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특수교육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의 수는 5만8000여 명이다. 특수교육 희망자의 25.4%에 불과한 비중이다. 학령기에 있는 장애학생 중 15%에 해당하는 3만4977명의 장애 학생들은 아예 학교교육을 못 받고 있다.
또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지만 입학을 미루고 있는 장애학생도 8436명에 달한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장애학생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대부분의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자식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특수학교에 보낼 경우 비장애인들과 평생 동떨어져 살게 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장애학생을 맡기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장애학생에게 전학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일반학교에 설치된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특수학급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체 초등학교 중 특수학급이 설치된 학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47.2%에 불과하다. 그나마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이 비율이 줄어든다. 중학교의 특수학급 설치 비율은 24.4%이며 고등학교는 10%에 그친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장애성인의 45.2%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통합교육이다"**
14일 장애인교육 운동가들이 교육부총리를 만났을 때 요구한 것도 이런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였다. 초등학교 과정에서만 주로 이루어지는 특수교육을 고등학교 단계까지 확대하는 것을 의무화해달라는 것이다.
37일 간의 단식을 끝낸 다음날인 18일 교육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14일 교육부와 합의한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보다 강도 높은 투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또 교육연대는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을 폐지하고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새로 제정할 것을 주장했다. 기존의 법률을 고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연대 김기룡 사무국장은 특수교육이라는 표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교육은 영재교육과 장애인교육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런데 영재교육에 관한 법률은 이미 따로 제정돼 있으므로, 굳이 특수교육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른 법률에서도 대부분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유독 교육에 관한 법에서만 장애인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제는 장애인들도 장애를 부끄러워서 감춰야 할 특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른 개성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오히려 특수교육이라는 표현은 장애인을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특수한 존재로 여기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이다.
단지 뉘앙스만을 문제삼는 게 아니다. 장애인교육 운동가들의 목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을 받는 '통합교육'을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경계 자체를 허무는 것이다. 장애학생의 학부모들이 자식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육연대가 제정을 요구하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역시 통합교육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지원 사항들을 명문화한 것이다.
***시장주의 국가 미국도 장애인 교육권은 엄격히 보장한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이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미국의 장애인교육법(Individuals with Disability Education Act, IDEA)이다.
미국은 교육의 시장화가 가장 강력하게 진행돼 있는 국가이지만, 장애인들의 교육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1975년 미국 의회가 제정한 장애인교육법에 따르면 지역교육청(Local School District)은 장애학생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유무형의 지원을 무상으로 제공할 의무를 진다. 이를 위한 비용은 주정부와 연방정부, 지역마다 조성돼 있는 교육기금이 나누어 지불한다.
또 이런 지원이 필요한지의 여부는 교사, 학부모, 장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개별화 교육팀(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Team)에서 결정한다. 장애학생에 대한 교육을 지역교육청이 담당하는 것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학생이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것을 명백하게 방해하고, 그 부모가 이를 인정할 때에만 통합교육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교육을 위한 첫걸음**
교육연대 도경만 집행위원장은 미국이 1975년에 보장한 장애인 교육권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게 한국의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의 통합교육 원칙은 흑인들의 민권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첨예한 갈등을 거치며 흑인과 백인이 같은 교실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합의를 끌어낸 경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통합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토양이 됐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그와 같은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목숨을 건 37일 간의 단식농성이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교육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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