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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라!

[프레시안 스포츠]이동국의 아름다운 부활을 기대하며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 준비되고 있을 때 이동국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이동국은 2002년 초 골드컵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다. 이동국은 그 뒤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부상의 여파로 몸 컨디션이 좋지도 않았지만 최전방 공격수부터의 압박을 강조하는 히딩크 감독의 전략에 이동국의 플레이 스타일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이동국은 완벽하게 변해 있었다. 더 이상 골을 주워 먹기 위해 걸어다니는 '게으른 스트라이커'가 아니었다. 지난 1월 중순부터 40일이 넘게 진행된 전지훈련과 평가전에서 이동국은 아드보카트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그가 넣은 골과 어시스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다른 공격수들과의 효과적인 위치변화도 자주 보여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 전에서 골든골을 넣어 '골든 보이'라는 별명이 붙은 안정환과의 경쟁구도에서 이동국은 분명히 한 발 앞서 있었다. 거의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원톱 출전이 확실시 돼 보였다. 하지만 부상은 또 다시 이동국에게 아픔을 줬다. 무릎 십자인대가 완전히 손상됐다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재활기간이 보통 6개월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그의 월드컵 출전은 이제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동국에게 독일 월드컵은 두 가지 의미에서 매우 중요했다. 지난 월드컵에서 도중하차했던 아픔을 씻는 것과 함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지만 별다른 소득없이 귀국했던 아쉬움까지 달래려 했던 게 이동국의 목표였다. 이동국은 2001년 6개월 간의 임대조건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 진출했지만 주로 벤치를 지키다 다시 포항으로 유턴한 바 있다.

13일 독일 스포렉 재활센터에서 정밀진단이 끝난 뒤 이동국의 에이전트 회사인 이반스포츠의 이영중 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선수 생활을 계획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이동국에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국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또 다른 월드컵 중도하차가 큰 아픔임에 분명하지만 남은 축구 인생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스트라이커 황선홍(현 전남 코치)은 중국 골키퍼의 고의성 짙은 반칙으로 무릎을 크게 다쳤다. 황선홍은 프랑스까지 갔지만 결국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4년 뒤 한일 월드컵에서 영웅이 됐다. 본선 첫 경기인 폴란드 전에서 황선홍이 선취골을 넣는 순간 4년 전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1994년 미국 월드컵의 볼리비아 전에서 골을 넣지 못해 팬들의 비난을 받았던 것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다.

부상으로 인한 월드컵 낙마가 아쉽지만 이동국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독일 월드컵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동국이 수술 뒤 재활을 거쳐 다시 그라운드에서 활기차게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2002년 월드컵의 아픔을 딛고 부활의 날갯짓을 했듯이 그가 또다시 날아든 악몽도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아직 먼 얘기지만 이동국이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펼쳐지는 월드컵에서 '제2의 황선홍'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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