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정치 관념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강금실 후보는 그런 측면에서 가장 비정치적인 듯이 보이지만, 오히려 정치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고 있다고 보는 게 정답이다." 강금실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강 전 장관의 '정치 실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지' 충격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정동극장의 보랏빛 출마선언에선 자신이 왜 정치에 발을 디디게 됐는지를 '괴테 코드'로 풀었다.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며 던진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이다"라는 말을 인용한 것.
새로 뽑았다며 돌린 강 전 장관의 명함에도 상징을 녹이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으레 명함의 절반은 사진과 구호를, 나머지는 온갖 이력을 빼곡히 담는 '촌티'를 확실하게 벗어던졌다.
보라색 바탕의 앞면에는 이름 석자와 홈페이지 주소만 있다. 흰색 바탕의 뒷면 왼쪽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싯귀'를 썼다.
보랏빛 색채감, 도시적이고 감성이 듬뿍 담긴 세련된 언어 등은 '이미지 정치' 논란의 중심에 강 전 장관을 위치시켰다. 하지만 흔히 보아 온 '카메라용' 이미지 정치와는 사뭇 다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강 전 장관이 형상화해내는 이미지에는 정서와 감정,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자극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왜 노란색을 썼는지, 한나라당은 왜 파란색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며 "강금실의 보라색은 여러 가지 색깔 중의 하나를 가져다 쓴 게 아니라 '강금실 정치'의 상징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치를 넘어섰다?**
강 전 장관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익숙했던 정치의 상궤에서 벗어난 행보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승부에 대한 집착을 버린 듯한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꼴찌조차 1등을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게 선거의 생리임에도 강 전 장관은 "내가 이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라고 인정했다.
자신의 테두리인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자유로운 접근법을 구사했다. 강남북 재정불균형 해소 문제와 관련해서는 열린우리당이 '권고적 당론' 수준으로 결정한 세목교환 방식보다 한나라당의 공동재산세가 더 현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선 "노 대통령이 문제 해결에서 정치공학적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이 돌아선다. 그 점에서 패착이 있었다"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했다(12일자 한겨레신문 인터뷰). 세금 정책을 앞세운 현 정부의 강남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일련의 행보를 두고 '우리당과의 거리두기' 혹은 '비(非)노무현'을 위한 '의도적 전략'만으로 치부하는 데에는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 단지 당과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택한 독자노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의 지인들은 이를 "'강금실다운 정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여야가 각종 사안에서 지난하게 벌여 온 줄다리기는 강 전 장관에게 전혀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서울시장 선거 틀을 벗어나서 봐야"**
정치권에 몸담지 않은 강 전 장관의 한 지인은 "하지만 이것이 '탈정치'는 아니다"고 말했다. 기존 정치에 관심 없는 '탈정치층'이 강 전 장관의 인기를 뒷받침하는 큰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들과 기존 정치권이 괴리된 지점에서 '강금실 정치'가 발생한다는 것.
그는 또한 "강금실 정치의 요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진정성의 정치, 시민 주체성의 정치, 포용성의 정치가 패러다임 전환을 구성하는 요소이고 이것은 기존에 우리사회를 이끌어 온 전통적 정치행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 20년, 산업화 30년, 해방 60년을 결산하는 시점에 서 있는 우리 사회가 적어도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주의의 일대 업그레이드를 요구받고 있다"며 "이런 방향은 당위적 흐름"이라고 부연했다.
강 전 장관이 당초 정치에 발을 들이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핵심적 고민이었다고 한다. 정치란 거대한 블랙홀과 같아서 일단 한 발을 들여놓기만 해도 기존의 구조적인 악들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론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한 사제가 그 구조악 속을 헤메다 결국 감옥을 거쳐 눈물을 뿌리며 정계를 떠난 일이라든가 초선 의원들이 흔히 말하는 "실제 정치를 해보니 '밖'에서 보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토로 등이 그런 실상을 잘 보여준다.
그런 고민의 과정을 거쳐 정치권에 들어선 강 전 장관이 정말 "강금실다운 정치"를 선보이며 당면한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분명히 아직까지는 전혀 미지수다. 우선은 강 전 장관이 "투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라며 일단 공개를 미뤄둔 컨텐츠의 함량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한나라당 등 경쟁자 진영에서 이미 "내용 없는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민주노동당도 "강금실의 실체가 무엇이냐"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강 전 장관의 다른 지인은 "강 전 장관은 자신이 소화해내지 못하는 정책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며 "지금 고시공부 하듯이 파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미지와 정책이 뒷받침 돼 '강금실 정치'가 일정한 가능성을 엿보인다면 적지 않은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설령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하더라도 다가올 대선 정국에 일정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강 전 장관의 지인은 "강 전 장관이 만약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가장 긴장도가 높아지는 쪽은 열린우리당의 대권주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금실 정치'가 성공을 거둘수록 그 후폭풍은 열린우리당이 먼저 맞게 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서울시장 선거의 틀을 벗어나서 강 전 장관을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강 전 장관의 '괴테 코드'를 빗대 "200년 전 독일에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자살을 하는 풍조(소위 베르테르 효과)가 만들어졌듯이 '강금실 현상'이 새로운 정치적 트랜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말 '말'과 '이미지'를 넘어서는 '강금실 정치'는 있는가?**
이런 해석의 실효성은 결국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날 '강금실 정치'의 전모가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 강 전 장관은 "짧은 기간에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해서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겠느냐"(한겨레 인터뷰)고 얘기한 바 있다.
그 말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얘기하면 그가 안고 있는 문제이지 유권자가 고민할 대목은 아니다. 유권자에게 "짧은 시간…" 운운하며 양해를 구할 문제도 아니다. 곧 선보일 '강금실 정책'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강금실 정치'의 실체가 그의 '경쟁력'과 그가 즐겨 사용하는 말 그대로 그의 '실존'에 대한 냉정한 판단의 첫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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