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내전의 주범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국제전범재판소로 신병이 인도되기에 앞서 망명지 나이지리아에서 도망친 지 이틀 만인 29일 체포됐다.
그의 신병은 현재 고국인 라이베리아를 거쳐 유엔전범재판소가 설치된 시에라리온으로 압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2003년 나이지리아로 망명한 이후 약 3년여 만에 테일러는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지난 세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됐다.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신병 인도' 밝힌 지 이틀만인 27일 나이지리아에서 잠적**
〈로이터〉는 이날 테일러를 태운 유엔 헬리콥터가 오후 7시(현지시간)께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유엔 대변인은 테일러가 곧바로 재판소의 한 유치장에 수감됐다고 밝혔다.
테일러는 지난 1990년대의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에 시에라리온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을 지원했으며, 살인과 성폭행 등 17가지 혐의로 2003년 유엔전범재판소에 기소됐다. 이후 그는 나이지리아로 망명해 최근까지 나이지리아에서 생활해 왔다.
테일러는 지난 27일 밤 망명지인 나이지리아 남부 칼라바에서 잠적했다가 이틀만인 이날 오전 카메룬 인근 나이지리아 동북부 감보루-은갈라 검문소에서 체포됐다. 그는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라이베리아의 수도 먼로비아로 압송된 뒤 다시 국제전범재판소로 넘겨졌다.
라이베리아 정부는 테일러의 신병을 나이지리아가 곧바로 시에라리온으로 이송해주길 희망했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그의 본국송환을 결정했다. 프랭크 응웨케 나이지리아 정보부 장관은 미국을 방문 중인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이 테일러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테일러를 즉시 모국인 라이베리아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중의 절차를 거친 데는 나이지리아와 라이베리아 정부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배경이 됐다. 라이베리아 정부는 테일러 추종자들이 아직도 국내에 남아있는 가운데 이들이 테일러의 신병 인도에 반발해 무장봉기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해 나이지리아에서 직접 시에라리온으로 넘겨주기를 희망했다.
반면 나이지리아의 경우는 지난 2003년 테일러에게 망명지를 제공하면서 테일러에게 신변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전범재판소로의 직접 신병인도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이같은 배경 속에 그간 테일러의 신병을 국제전범재판소로 인도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해 오던 오바산조 대통령이 최근 입장을 바꿔 25일 신병을 라이베리아로 인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발표 이틀 만에 테일러가 실종되면서 일각에서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 오바산조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를 대놓고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테일러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는 방책으로 테일러의 도망을 방조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결국 29일 테일러가 체포되면서 테일러의 도피행각과 함께 그를 둘러싼 각 나라들의 신경전도 끝이 난 셈이다.
***찰스 테일러, 그는 누구인가?**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인 테일러는 군벌지도자 출신이다.
1989년 민족애국전선을 이끌고 라이베리아 정부를 공격하는 반란을 일으켜 1990년 사무엘 도 대통령을 처단했지만 라이베리아는 내전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1996년 내전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 테일러는 이듬해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비록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의 집권기는 반란과 지역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집권 6년 만인 2003년 8월 미국과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요구에 떠밀려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이미 1983년 사무엘 도가 이끄는 쿠데타 정부에 참여해 약 100만 달러를 착복한 혐의로 기소돼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기도 했던 테일러는 군벌지도자로 다시 복귀해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내전에 관여하며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대신 다이아몬드를 넘겨받아 부를 쌓는 등 수많은 개인비리를 저질렀다.
더욱이 그가 일으킨 내전이 14년 간 이어지면서 라이베리아에서는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또 그는 시에라리온 내전에 무기를 지원하며 어린 병사들까지 모집해 반군을 조직하고 훈련시킨 혐의를 받아 2003년 6월 유엔특별재판소에 기소됐다.
그가 도운 시에라리온 내전에서는 11년 간 약 5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민간인의 팔다리를 자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러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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