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은 정치권에 관한 한 칭찬에 인색하다. 여는 이렇다 야는 이렇다 앵무새처럼 양쪽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고, 다음엔 '양쪽 다 문제다'라는 식으로 비판하기 일쑤다.
하지만 칭찬할 것은 칭찬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오랜만에 칭찬할 일이 생겼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주인공이다.
***박관용 의장, 정부 시정연설 총리 대독 일시 거부**
박관용 국회의장은 7일 오전 예정된 새해 예산안에 대한 정부측 시정연설에 대해 국무총리 대독을 이유로 한때 본회의 사회를 거부했다.
박 의장은 이날 본회의 시작 전에 각당 총무를 불러 새해 예산안 제출에 따른 시정연설을 김대중 대통령이 아닌 김석수 총리가 대독하는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이유로 거부하겠다고 통보했다.
박 의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취임후 3개월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정중하고 간곡하게 간청했고 대통령도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해 나올 것이라 기대했으나, 그동안 청와대가 일언반구도 없다가 관례라고 거부하고, 오늘 아침에야 연락이 온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청와대의 처사를 비판했다.
또 이날 오전 의장실을 찾은 김석수 총리에게도 "총리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국회를 이렇게 모욕하는데 대해 참을 수가 없다"며 "코펜하겐까지 가서 연설을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 국회에서 연설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박 의장의 강경방침에 대해 민주당 정균환 총무는 물론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까지도 "현 시점에서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지 않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반대했다. 결국 본회의는 1시간여 늦게 개회됐고, 김석수 총리의 시정연설을 청취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해야 한다"**
그러나 김 총리의 시정연설 이전 박 의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나오지 않고 총리가 대독케 한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로, 보존할 가치가 없다. 권리 위에 잠자는 국회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 의심할 수밖에 없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요구했다. 이는 특정 정권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해야 한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또 덧붙였다.
"총리가 지참한 시정연설을 접수하고 속기록에 게재하되 대독은 허용하지 않으려 했으나 의장단과 교섭단체회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관례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번 일은 이 정도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남긴 의미는 크다. 비록 사소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국회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켜 왔던 관행에 대해 강한 제동을 건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의 실천이다. 박 의장이 이날 보여준 국회 권위 존중의 의지를 다음 정권에서도 강력히 지켜나가는지, 청와대가 그것을 존중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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