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브로크백 마운틴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브로크백 마운틴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특집] 영화와 함께 원작 동명소설, OST 불티

제78회 아마데미 수상작 <브로크백 마운틴>이 비상업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국내에서 30만 관객을 모으며 오랜만에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책과 OST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화제다. 애니 프루의 동명 원작소설은 발매 전부터 온라인 예약주문으로 출간 직후 재판을 찍어냈으며 발매 사흘만에 3판을 찍어 냈을 정도로 빠르게 팔려나가고 있다. 윌리 넬슨, 루퍼스 웨인라이트 등의 노래가 수록돼 있는 OST 역시 핫트랙스 등 음반사이트에서 3주 연속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애니 프루의 원작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을 소개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자 애니 프루는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인 3월 11일 영국 신문 '가디언'에 시상식 참석 후기를 기고했다. '붉은 카펫 위의 피'라는 제목의 이 글은 <브로크백 마운틴> 대신 <크래쉬>에 손을 들어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조용히 냉소하고 있다. 그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애니 프루의 원작소설 <브로크백 마운틴>
"대략 6000여 명의 아카데미 시상식 투표인단은 대부분 LA 지역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은 격변하는 문화와 오늘날 미국을 정의하는 들끓는 소요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그들 자신의 분리된 도시에서도 떨어진 채 강철로 만든 문 뒤에서 호화로운 요양소 같은 곳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바로 그들이 어떤 영화가 좋은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라이온스 게이트가 투표 몇 주 전 아카데미 투표인단에게 <쓰레기 Trash>-미안합니다- <크래쉬 Crash>의 DVD 카피를 듬뿍 돌렸다는 소문도 있다." 이것은 단지 일부일 뿐이다. 글의 이면에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시끌벅적한 쇼비즈니스 문화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다. 와이오밍의 척박한 땅을 배경으로 자연과 사람, 역사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써 온 애니 프루에게 도시인들의 속물주의는 역겨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애니 프루가 1999년 발표한 소설집 <브로크백 마운틴 Close Range: Wyoming Stories>에 수록된 11편의 단편들은 도시의 열기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렌디 드라마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곳,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것이다. 험준한 로키 산맥 끝자락에서 살아가는 와이오밍의 카우보이들, 언제나 눈보라나 가뭄 같은 날씨와 싸워야 하고, 늘 자연의 거대한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강인한 척하지만 실은 나약한 인간의 초상이 담겨 있다. 목축업과 광산업 같은 전통적인 산업이 그 기반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실패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자연과 부대껴 지내는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부모와 형제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소설집은 그다지 가벼운 호흡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애니 프루의 문장들은 미국인들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와이오밍의 설화와 민담, 역사와 생활에서 건져 올린 여러 고유명사들이 무심한 도시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생소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애니 프루가 고심해서 선택한 단어들이 치가 떨리도록 세밀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 풍경과 인물의 외양, 생활의 잔재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가령 존 업다이크가 '금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선정하기도 한 첫 번째 작품 '벌거숭이 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하지만 바람은 무거운 차를 뒤흔들 정도로 세찼고 거센 기류도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를 건드렸다. 연깃빛 깃털 같은 눈이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풍아한 샘처럼, 마음이 비뚤어진 눈의 악마처럼, 베일을 쓴 아랍 여자처럼, 유령 기수처럼."(p. 26)
애니 프루
표제작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도 애니 프루의 묘사력은 압도적이다. 가령 에니스와 잭이 마지막 만남을 갖는 장면은 이런 풍경 묘사로 시작된다. "잭은 예전 그 독수리 깃털을 그대로 꽂은 낡은 모자를 쓰고서 한낮의 열기 속으로 고개를 쳐들고는 로지폴 소나무의 송진, 말라 굳은 침엽수 잎과 뜨거운 바위, 말발굽 아래 으깨진 쌉쌀한 곱향나무 등의 향이 나는 공기를 마셨다. 일기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에니스는 이런 날이면 나타나는 뜨거운 뭉게구름이 오지 않는지 서쪽을 보았지만, 잭은 구름 한점 없는 파랑이 너무 깊어 올려다보면 빠져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p.341) 익히 알려진 대로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은 고작 40쪽에 불과한 짧은 단편이다. 잭과 에니스의 외모는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묘사돼 있지만, 영화는 소설의 기본 틀을 그대로 살리면서 필요한 부분에 살을 보태고 있다. 잭의 아내 루린, 에니스의 딸들, 에니스의 이혼과 잭의 멕시코 여행, 추수감사절 에니스와 잭에게 닥친 불행 등등. 소설이 단 한두 줄로 요약하고 있는 것들을 영화는 멋진 상상력으로 채워놓았다. 물론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두 카우보이의 기나긴 사랑에 감동받았다면, 그것은 애니 프루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원형 덕분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프레시안무비
"연기와 산 깨꽃과 잭의 땀 냄새를 기대했으나, 잔존하는 냄새는 더 이상 없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그 기억, 이제 손에 들고 있는 것 말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마음속의 브로크백 산뿐이었다."(p. 353) 에니스가 포개진 두 장의 셔츠의 냄새를 맡은 이 대목은 영화 못지 않은 울림을 자아낸다. 애니 프루가 빚어낸 농밀한 세계에 동참하시라. 언어적 상상력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