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은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황제 테니스' 의혹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이날 회견은 기자들의 질문공세 속에서 시종 열띤 분위기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의혹은 계속 확대일로에 있다. 이 시장의 답변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2000만 원을 스스럼 없이 내놓은 통 큰 주부?**
이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테니스장 사용료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하며 해명했다. 그의 해명에 따르면 한국체육진흥회가 운영하는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테니스장을 3년 간 사용하던 이 시장은 지난해 말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 600만 원을 지불했다. 이 시장과 함께 테니스를 쳤던 다른 동호회원들도 최근 사용료를 지불했다. 그런데 여기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3년 간의 사용료 2000만 원을 동호회 총무인 안인희 씨가 한꺼번에 선불했다. 다른 회원들이 갹출해서 안 씨에게 전해주기로 했지만, 아직 돈을 낸 회원은 없다. 그런데 거액의 돈을 지불한 동호회 총무 안 씨는 부업으로 생활설계사를 하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이런 안 씨가 거액의 돈을 스스럼 없이 내놓을 만한 형편이겠느냐는 것이다.
또 한국체육진흥회는 테니스장 사용료를 왜 3년 동안이나 청구하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테니스코트 독점, 정말 없었나?**
이 시장은 테니스장을 주말 내내 독점 예약해 놓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비서실을 통해 미리 연락을 하고 테니스장을 찾아갔는데, 굳이 종일 테니스장을 비워두었을 리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이 알았건 몰랐건, 남산 테니스장이 서울시테니스협회장과 서울시체육회 간부에 의해 주말마다 예약돼 있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또 이 시장이 테니스 동호회라고 부른 모임 속의 전현직 테니스 선수들 역시 서울시테니스협회 간부로부터 연락을 받고 참여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시장은 이같은 사실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말대로라면 설령 테니스장을 독점하는 황제 테니스를 쳤다는 게 사실로 드러나도 이 시장은 자신이 황제 테니스를 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남산 테니스장에 코트는 하나뿐이다. 그것을 3년 동안 한 번도 거절당한 적 없이 사용해 왔으면서, 독점예약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로비는 없다! 과연?**
이 시장은 자신과 테니스를 친 사람들이 모두 시정과 별 관계가 없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교수, 의사, 전현직 테니스 선수로서 시정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시장을 남산 테니스장으로 처음 초대한 선병석 전 서울시테니스협회 회장은 교통안전시설물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또 선 씨는 이 시장이 취임하기 전에 서울시에 납품을 한 적이 있다. 사업적인 이유로 이 시장에게 접근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이런 선 씨에 대해 이 시장은 잘 모르는 사람일 뿐 아니라 "주제 넘게 누구를 소개하거나 청탁을 할 만한 위치"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 회장은 2004년 말까지 테니스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다. 또 이 시장을 초대하던 시기에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이런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잠원동 테니스장 왜 지었나?**
서울 송파구 잠원동 학교용지에 편법으로 테니스장을 지었다는 의혹에 대해 이 시장은 "강북에 실내 테니스장이 있으니 강남에도 지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잠원동 실내체육관은 가건물이다. 도시계획법 상 학교용지로 묶여 있기 때문에 동원한 편법이다. 이같은 가건물을 짓는 데 무려 54억 원을 들였다. 20일 기자회견에서 시인한 것처럼 이 시장은 아직 완공하지도 않은 테니스장에서 직접 시범경기를 하기도 했다. 이 시장의 잠원동 테니스장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잠원동 테니스장과 담장을 같이하고 있는 반원초등학교의 경우 가건물을 지어 이용해야 할 정도의 과밀 학교였다. 테니스장을 짓는 게 시급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굳이 편법까지 동원해서 실내 테니스장을 지어야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또 이 시장은 왜 그렇게 테니스장 건설에 관심을 보였는지 등도 보다 구체적인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서울시체육회는 어떤 역할을 했나?**
이 시장을 테니스 동호회로 초대한 선병석 전 서울시테니스협회 회장은 2005년부터 동호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동호회 모임을 챙긴 사람이 서울시체육회 이명원 상근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 시장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서울시체육회에 연봉 9860만 원의 상근부회장 직이 신설됐고, 이 자리에 이 부회장이 임명됐다. 이 시장은 서울시가 만년 2등에서 벗어나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스카우트하는 데 능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이 시장의 테니스 모임을 챙기기 시작한 건 2005년 2월부터다. 그리고 상근부회장 직이 생긴 것은 바로 다음달인 같은 해 3월이다. 누구라도 석연치 않은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또 이 부회장이 취임한 후 서울시체육회는 잠원동 테니스장 관리에도 손을 뻗쳤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이 반발하자 이번에는 서울시가 나섰다. 서울시는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 잠원동 테니스장을 시체육회에 맡겨야 한다는 공문을 서초구청에 내려 보냈다.
이 때문에 서울시체육회를 챙긴 이 시장과 테니스 동호회를 챙긴 이 부회장 사이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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