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과 배우 등 문화·예술계 인사 2백12명은 25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담은 영화 '죽어도 좋아'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려 사실상 영화상영을 금지한 것에 반발해 '영상물등급위원회 개혁을 위한 문화예술인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을 발표한 문화예술인들은 25일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 감독, 이하 영등위) 국정감사가 열린 대학로 문예진흥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8세 이상이라면 누가 보아도 좋을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담은 영화 '죽어도 좋아'가 국민적 여론을 무시하는 매우 주관적이고 비현실적인, 비문화적이고 비민주적인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것은 명백한 검열행위'라고 비판했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현실과 현행 법제도를 고려할 때, 재심에서의 제한상영가 등급판정은 사실상 유통금지와 같다"는 지적이다.
선언문을 낭독한 이현승 감독, 방은진씨,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 등은 문성근(영화배우), 임진택(연극인), 박재동(만화가) 등 문화예술인 2백12명의 이름으로 발표된 선언문을 통해 영등위 개혁을 위한 ▲위원 선임과정과 절차의 개혁 ▲내부 심의과정 공개 ▲심의위원 개인의 자의적 심의 방지 ▲민간전문인 채용을 통한 자율성 확보 ▲현 영등위원장 사퇴 등을 요구했다.
한편 김재용 영등위 가요·음반소위원회 심의위원과 이원재 비디오등급분류소위원회 심의위원도 25일 영등위의 개혁을 촉구하는 별도의 성명서를 내고 등급위원직을 사퇴했다.
김재용·이원재 심의위원은 성명서에서 "지금의 사태는 결코 개별 영화의 등급분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오래된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의원들도 영등위 국감 중 영화 ‘죽어도 좋아’를 단체로 관람하고 이 영화의 등급에 대한 질의를 벌였다. 영화관람 후 조숙배 민주당 의원과 권오을 한나라당 의원 등은 영화 상영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강신성일 한나라당 의원과 정진석 자민련 의원 등은 청소년보호와 선정성을 이유로 상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음은 문화예술인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방은진 영화배우 겸 감독과 조영각 전 영등위 심의위원 인터뷰.
<방은진씨 사진>
***방은진 영화감독 겸 배우 "'죽어도 좋아' 제한상영은 말도 안돼"**
프레시안: 왜 서명에 참가했는가?
방은진: 내가 출연한 작품이 등급문제에 관련된 피해를 보거나 한 적은 없었다. 지금 감독으로서 첫 연출작을 준비중인데 그 작품도 심의에 걸릴 내용은 아니다.
프레시안: 이렇게 나선 이유는?
방은진: 현장 감독들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몇 달, 몇 년을 고민하고 고민해서 얻은 자신의 살과 피와 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심의에서 잘리거나 자기 머릿속에서 자진 검열을 하거나 제작사에서 친절하게(?) 잘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몇 년이 지난 후 후회하는 모습을 여럿 봤다.
프레시안: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작품도 ‘안전’하다면 일종의 연대의식에서 참가한 것인가?
방은진: 그렇다! 연대의식에서 나선 것이다.
프레시안: ‘죽어도 좋아’는 관람했나?
방은진: 봤다. ‘죽어도 좋아’(제한상영가)는 정말 말도 안되는 케이스다. 뭐가 중요한지 영화가 궁극적으로 무얼 이야기하는지가 중요한데 영등위는 지엽적인 표현을 가지고 문제삼고 있다. ('죽어도 좋아'는) 궁극적으로 노인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것이다. 나도 작품을 보며 나중에 나이 들어서의 사랑과 삶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정서해악’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작품이 이상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알지 않나?
프레시안: 사회적인 이슈나 여성문제 등에 당당하게 의견을 내는 편인데, ‘드센 이미지’가 심어져서 캐스팅 등에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걱정은 되지 않는가?
방은진: 깔깔깔. 찍혀서 괜찮다. '방은진'하면 이런 거 잘 나서는 것으로 벌써 찍혔다. 나는 이런 사람으로, 자기 주장이 확실한 인물로 다들 알고 있다.
<조영각씨 사진>
***조영각 전 영등위 심의위원 "상영금지처분은 위헌"**
프레시안: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조용각: 영등위는 12세, 15세 하는 식으로 등급심사를 위한 서비스기관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재는 이보다는 ‘검열적인’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레시안: 특히 ‘죽어도 좋아’로 그런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조용각: ‘죽어도 좋아’는 제한상영관이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상영금지처분을 받은 셈이다. 상영금지는 헌재에서도 위헌으로 결정이 났는데 말이다.
프레시안: 안에서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나온 것에 대한 견해는?
조용각: 현재 영등위는 개혁을 위한 노력이나 대안 없이 관성에 의해 일이 진행되는 곳이다. 제도의 개선이나 내부적인 토론을 방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이 안 통한다. 개선의 여지가 없다.
프레시안: 이런 사안이 문제가 될 때마다 표현의 자유가 미풍양속이나 국민정서를 헤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데?
조용각: 우리사회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만18세 이상의 성인들이라면 더욱 그렇다.(옆에 있던 한 영화인은 “국민이 모두 중학생인 나라도 아닌데 영등위는 국민을 상대로 중학교 지도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죽어도 좋아' 영화 내용은**
영화 ‘죽어도 좋아’는 방송국 PD 출신인 박진표 감독이 70대에 재혼한 노부부의 실화를 기초로 실제 인물들을 캐스팅해 만든 극영화로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난 7월 23일 영등위의 일반상영을 위한 등급 심의과정에서 구강성교와 성기노출 등 과도한 성애장면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일반극장상영·비디오출시 금지 등의 제약을 받는 ‘제한상영’ 등급을 받았고, 8월 27일 재심의에서도 다시 같은 등급을 받았다.
재심과정에서 조영각씨 등 영등위 심의위원 3인이 심의결과에 항의해 심의위원직을 사퇴하면서 영화계에 새로운 검열논란을 촉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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